[단소리 쓴소리]‘인터넷 대통령’
[단소리 쓴소리]‘인터넷 대통령’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1.19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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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달 전 출근길, 발에 밟힐 뻔한 명함 크기의 종이쪽지 한 장에 시선이 꽂혔다. 어딘지 모르게 낯익은 얼굴. 알고 보니 살벌하기 짝이 없는 우리네 정치판에 가끔씩 웃음을 선사하기도 하는 재간꾼의 한사람이었다. ‘인터넷 대통령’이란 글씨 밑에 ‘본좌 △△△’라는 이름자가 나오고 다시 그 밑에 ‘제15, 17대 대통령 출마’란 경력이 씌어 있는 인물.

유튜브에서 그의 강연을 들으라는 홍보전단지였다. 하지만 그 뒷면에 나열된 14가지 저서명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1) 국회의원을 100명으로 축소, 무보수 명예직으로 2) 결혼하면 1억, 출산하면 3000만원 지급, 학교등록금 전액 지원… 4) 국민배당금 매월 150만원씩 지급 5) 고교 1학년부터 전공 1과목만 시험, 수능·야자 폐지, 14세부터 투표권 부여…. 참 황당하다는 말밖에 안 나왔다. 하지만 그는 특유의 미끼로 시선을 붙들어 매려고 안달이었다. “새마을운동과 반도체산업, 방송통신대학 제도를 최초로 건의하여 실현시켰다”는 호언장담이 바로 그것.

다시 그의 ‘저서’로 돌아가 보자. 6) 나라에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도둑놈들이 많습니다. 7) 유엔본부를 판문점으로 이전, 아시아 연방통일 준비… 9) △△△ 공약을 왜 따라해?… 12) 무궁화 꽃은 지지 않았다… 13) 내 눈을 바라봐 너는 행복해지고…. 이쯤 되면 그가 누군지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화제의 주인공은 온갖 기행과 독특한 공약으로 한반도 정치계에 유머감각을 불어넣은 허경영 씨.

곧장 인터넷사전을 들춰 보았다. ‘선거 출마 이력’이 눈에 들어왔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선거 낙선(득표율 0.4%, 경제공화당 총재)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선거 낙선(비례대표, 공화당) △1997년 제15대 대통령선거 낙선(득표율 0.2%, 민주공화당 총재). 특이한 것은 그의 직업이 ‘정치인’ 외에 ‘가수’가 하나 더 따라붙는 것. 그래서인가, 어느 통신매체는 2018년 1월 23일 “정당인 허경영이 26세 연하 ooo과의 열애설로 화제를 모았다”는 기사를 올린다. 물론 허 씨는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하고 말지만….

‘허 본좌’라는 별칭도 갖고 있는 ‘허경영 씨’라고 하면 필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먼저 떠오른다. 시종 ‘자가발전’이었던 것으로 기억나지만 그의 주장에는 그럴만한 뭐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2007년 12월 초에 올라온 ‘닉네임rusi’라는 네티즌의 글을 잠시 음미해보자. “예전 박정희 대통령 시절 허경영 후보님이 정책보좌관 10년을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박근혜 의원과 친분을 쌓으셨고요. 같이 사진도 찍은 게 많이 있습니다”

그런저런 이력의 허경영씨가 21대 총선을 앞두고 정당을 다시 한 번 만들었다. 이른바 ‘국가혁명배당금당’이다. 놀라운 것은 이 신생 정당이 호남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이다. 1월 16일자 연합뉴스는 이런 기사를 올렸다. “4·15 총선이 90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신생 정당인 국가혁명배당금당이 전북에서 당세를 넓히고 있다. 16일 국가혁명배당금당 전북도당에 따르면 도당은 도내 10개 선거구에 13명의 예비후보를 냈다. …예비후보의 면면을 보면 회사원, 자영업자, 요양보호사, 약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주부 등 직업군도 다양하다. 도내에선 1천200여명이 당원으로 등록됐다”

한때 박근혜 전 대통령더러 “나와 결혼할 사이”라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기행의 달인’ 허경영 씨. 그가 이번에는 어떤 감칠맛 나는 유머를 국민들에게 선사할지, 그 뒷얘기가 궁금하다. 1월 17일자 근착 뉴스는 한국기자협회 초청 신년기자회견에서 허경영 국가혁명배당금당 대표가 총선 정책 33가지를 제안했다고 전했다. “총선 예비후보 등록자 수 1위로 기성 정당을 심판할 것”이란 너스레도 같이.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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