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法)대로 막가는 울산시
법(法)대로 막가는 울산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1.15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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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法)은 법(法)이다.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든 그리스·로마 신화 속 ‘법과 정의의 여신’ 유스티치아(Justitia)는 눈을 가리고 있다. 인간의 사정을 보지 않고 법대로 판단하겠다는 뜻이라고 한다. 여신(女神)이라면 그럴 수 있겠다고 수긍할 수도 있지만, 어디 인간 세상에 통할법한 소린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소리는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래도 을(乙)의 처지에서 억울함을 호소할 곳은 법(法)밖에 없다.

지난 9일 울산지방법원 행정1부는 혁신도시 산학연클러스터 7부지에 건립된 울산의 첫 지식재산센터 ‘세영이노세븐’의 분양자들이 울산시를 상대로 낸 ‘입주승인 반려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 따른 1심 재판에서 분양자들의 손을 들어줬다.(본보 1월 13일자 2면 보도) 울산시가 입주 신청 서류에도 없는 서류를 보완해서 제출하라고 한 것에 대한 판결이었다.

앞서 울산시는 지난해 11월 18일 미포산단 입주업체가 울산시를 상대로 낸 ‘대기배출시설 설치허가 신청 거부처분 취소’ 소송에서도 1심에서 패했다. 에너지회수재활용업체인지 폐기물처리업체인지를 판가름하는 재판이었는데, 법원은 입주업체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본보 2019년 11월 19일 5면 보도)

이러한 행정소송들을 취재하면서 문득 울산시가 한 번만 더 숙고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송 당사자인 원고들은 수십 차례 시청을 찾아가 민원을 제기했고, 부당함을 설명하는 과정들을 거쳤다. 그런데도 돌아온 답은 ‘법(法)은 법(法)’이라는 반응뿐이었다.

울산시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행정소송 승소율이 87.9%로 5년 내 최저치를 기록했다. 소송 승소율은 2015년 88.1%에서 2016년 90.5%, 2017년 95.2%까지 올랐다가 2018년 93.1%, 지난해 9월 현재 87.9%로 다시 떨어진 것이다. 승소율이 3년간 오름세를 보이다가 2017년을 기점으로 다시 하락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반영하듯 소송 건수는 2015년 164건, 2016년 154건, 2017년 144건으로 3년 내리 줄어들었다가 2018년에는 175건, 지난해에는 9월 기준 154건으로 다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울산시는 “승소율이 떨어지는 것은 경제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자치단체를 상대로 소송하는 어려운 시민 등의 사정을 이해하고 받아주려는 재판부 분위기 등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분석은 어폐가 있다. 눈을 가리고 법률로만 판단하는 재판부가 시민의 어려운 사정을 반영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소송 건수가 는 데 반해 승소율이 낮은 것을 두고 재판부를 탓하는 셈이다. 울산시가 법(法)대로 막나갔다가 패하는 것을 인정치 못하는 것이다.

소송 건수가 는 것은 공무원들이 법 뒤로 숨어 시민의 공복(公僕) 역할을 소홀히 한 결과라는 느낌이 짙다. 어찌 보면 법은 무엇을 하지 말라는 규제다. 그래서 규제개혁특위가 생기고, 울산시는 신문고위원회를 만들었다. 또 시나 구·군청들이 시도 때도 없이 자랑하는 ‘원스톱 행정서비스’와 같은 적극행정을 펼쳤다면 행정소송 건수가 그처럼 많아졌을까?

몇 년째 준비만 하는 것으로 보이는 북구 강동동의 ‘레저타운’만 해도 그렇다. 한 업체가 3천억원 가량을 투자하겠다는데도 울산시는 법 규정에 안 맞다며 하세월이다. 투자자들이 지갑을 빨리 열 수 있게 만드는 법 제도를 찾고 최선의 서비스를 해주는 게 맞지 않은가?

지역 기업인들은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에 분통을 터트리는데 당사자인 공무원들만 이런 여론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정인준 취재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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