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하는 ‘부사(副詞)’
유혹하는 ‘부사(副詞)’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1.14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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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루이 암스트롱 음악을 무척 정말 아주 참 좋아한다.’

한 문장에 부사를 이렇게 많이 써 본 일은 여태 처음이다. 감정이 너무 노출되어 악문이 된 것 같다. ‘나는 루이 암스트롱 음악을 좋아한다’고 하면 될 것을 위와 같이 ‘무척’의 유의어를 총동원하여 최선을 다하는 듯한 기분을 나타냈다. 그러나 멋있게 써 보려는 욕심에서 그만 글이 느끼해져 버린 것 같고, 뭔가 거짓말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한국어 품사론에서 별장으로 다루고 있는 ‘부사’의 설명을 참고해 보자.

‘부사’는 용언, 부사, 문장, 체언, 관형사 등의 앞에 놓여 뜻을 분명히 하는 품사다. 순우리말로 ‘어찌씨’라고 한다.

부사는 문장 내에서 항상 부사어로만 쓰일 뿐 서술어와 관형어로는 쓰일 수 없다. 물론 체언에 부사격 조사가 붙거나 용언에 부사형 어미가 붙어 부사어로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그 품사가 부사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임시로 부사적 기능을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활용도 하지 않는다. 따라서 조사나 활용어미가 붙을 수 없다. 가끔 ‘아직도 안 왔다, 빨리만 오너라’와 같이 보조사가 붙는 경우도 있다.

나는 평상시 ‘부사’를 자주 쓰는 편이다. 그러면 혹시 글이 아름답게 보일까 해서다. 어떤 때는 괜히 문장 속에서 부사를 일부러 넣어 보기도 하고 아예 빼 버리고 써 보기도 한다. 부사가 쓰인 그 자리에는 고민한 흔적이 아롱아롱 그려진다.

왜 자꾸 부사를 습관적으로 쓰는 건가? 부사를 넣어 가만히 응시해 보면 글이 순진하고 촌스럽게 보이기도 하는데도 왜 그렇게 쓰는지 모르겠다.

50여 편의 작품 중 대부분이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가 스티븐 킹(S. King, 1947~)은 공교롭게도 ‘지옥으로 가는 길은 부사로 덮여 있다’고 부사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 발언에 계속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대충 다음과 같다.

‘그것은 민들레와 같다. 당신의 집 마당 풀밭에 핀 한 송이 민들레는 특별하고 예쁘다. 그러나 그것을 뽑지 않는다면 다음날 다섯 송이가 피어 있을 것이다. 그 다음날에는 쉰 송이가… (중략) 결국 풀밭은 민들레로 완전히 덮여 있게 될 것이다. 그때쯤 되면 당신의 눈에는 그것이 잡초로 보일 것이다. 그땐 너무 늦었다.’ 〔유혹하는 글쓰기〕

그렇게까지는 아니겠지만 좋지 않은 문장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기에 나는 앞으로 부사를 자주 쓰지 않으려 한다. 음식의 단맛이 입에 질리듯이 매너리즘에 빠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미국의 문학이론가 스탠리 피시(S. Fish, 1938~)는 그의 《문장작법》에서 유명한 시 한 편을 실었다.

‘어느 날 길에 모인 명사들. 형용사 하나가 지나간다. 짙은 아름다움을 간직한 여인. 명사는 충격과 감동으로 변화를 겪는다. 이튿날 동사가 이들을 몰아 문장을 창조한다.’ 〔케네스 코치, ‘영원히’〕

그는 문장에 있어서 조화를 강조하면서도 ‘부사’에 관한 이야기는 조금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부사라는 품사는 동사보다 뭔가 파워풀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부사는 명사의 어휘같이 한 단어로 익어 버린 명쾌한 느낌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하물며 어느 여성 소설가는 부사를 가리켜 ‘집나간 막내 삼촌’ 같다고 한다. 역시 문장에서도 무책임한 행동을 일삼고, 별일도 아닌데 큰소리만 치고 있기 때문이다. 부사라는 말은 정말 나를 유혹한다. 또 부사를 썼다.

김원호 울산대 인문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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