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實學)과 재세이화(在世理化)
실학(實學)과 재세이화(在世理化)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1.13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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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등장하여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실학이 ‘실제로 소용되는 참된 학문’으로서 당시의 시대상황과 서양문물의 유입에서 나왔다고 설명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누구도 그 뿌리를 우리 겨레의 얼인 ‘홍익인간 재세이화’와 연결시켜 설명하지는 않는다. 오늘은 이 문제에 대해 잠시 산책한다.

실학(實學)이라는 용어는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17세기 이전부터 제법 폭넓게 사용되어 왔다. 고려 초기에 최승로(崔承老)는 유교를 불교에 견주어 실학이라고 했으며, 고려 말기 성리학자들도 도교와 불교를 허무와 적멸에서 진리를 찾는 허학(虛學)이라 비판하며 자신들의 학문을 실학이라고 강조했다. 조선 전기에도 실학은 유학의 본령에 충실한 학풍이라는 뜻에서 경학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처럼 유학자들은 불교와 도교를 허학이라고 비판하면서 유학을 실학이라고 인식해 왔다.

그러나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실학은 17세기 중엽~19세기 초반, 조선 후기 사회에서 나타난 새로운 사상으로, 당시 백성들의 생활과 동떨어진 경향이 강했던 유학에 대한 반성의 일환으로 등장한 학풍이다. 유학이 ‘공리공론(空理空論)에 기초한 헛된 학문’으로 변질되면서 그 관념성과 경직성을 비판하며 ‘허학’이라 하고, 경세치용(經世致用)과 이용후생(利用厚生),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문 태도를 강조하는 유학의 새로운 학풍이나 사상의 흐름을 실학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나는 실학사상의 뿌리가 우리 겨레의 원초적 생각의 틀에 있다고 본다.

내가 울주군 삼동면 출강리에서 살던 어린 시절, 어머니가 우물가에 냉수 한 그릇 떠놓고 빌면서 삼신, 용왕, 미륵부처님 등 전통무속과 불교가 어우러진 기도를 하시는 것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강원대학에서 역사공부를 하면서 신라의 최치원이 ‘우리의 사상이 현묘지도인 풍류도로서 선(仙)에 그 뿌리가 있으며, 불교·도교·유교의 가르침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고 했다는 내용을 배웠다.

그런데, 대학에서는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인도나 중국의 불교와 다른 한국불교로 발전된 것처럼 한국도교, 한국유교는 말하면서 그렇게 바꾸는 역할을 한 ‘한국철학’ 즉, 우리의 고유 철학사상인 풍류나 선(仙) 사상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 위해 한국철학사와 관련된 글을 몇 개 읽었는데, ‘한국철학사’라면서도 우리 고유의 철학사상은 없고, 한국불교·도교·유교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었다. 그 후에 최민홍·이을호·김상일 등의 한사상학에 대한 책을 접했지만, 우리 전통사상인 ‘한사상’이 학계의 공인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삼국유사 등 몇 종류의 책에 나오는 ‘단군사화’에는 우리 겨레 고유의 사상으로 홍익인간(弘益人間)이 나오고 그것을 현실 속에 실천하는 것을 강조하는 재세이화(在世理化)라는 말이 등장한다. 나는 이 내용이 겨레 얼로서 실학이 등장한 가장 직접적 이유라고 생각한다. 우리 조상들은 홍익인간을 핵심으로 하는 선(仙) 사상이든 불교·도교·유학이든 간에 그 가르침 자체를 아는 것 이상으로 그것을 현실생활에서 실천하는 것을 강조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도 사후 극락에 가려는 것이 아니라 현실세계를 정토로 만들고자 하는 정토불교 사상이나 호국불교 사상으로 바뀌었으며, 우리나라에 들어온 도교는 아예 도교 도장이 만들어지지 않고 생활 속 실천덕목으로 접수되었으며, 유교도 이(理)와 기(氣) 중 어느 것이 우선이냐에 하는 이론적 논쟁보다 생활 속에서 실천하다보면 이와 기가 적절하게 조화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기묘합론(理氣妙合論)이 한국유교의 특징으로 자리매김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겨레의 원초적 생각의 틀은 홍익인간 즉, 어우러짐(=조화)의 원리와 그것을 생활 속에 실천하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실학도 이런 바탕에서 나왔으며, 이런 생각의 틀이 미래 인류사회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믿는다.

박정학 역사학박사·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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