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마을 편지] 외고산 옹기마을 사람들
[옹기마을 편지] 외고산 옹기마을 사람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1.13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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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 울주군에는 6·25 전쟁을 전후하여 형성된 외고산 옹기마을이 있다. 이 마을에는 경북 영덕에서 옹기 일을 하던 허덕만 옹기장인이 이주해 오면서 옹기업을 하는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허덕만 옹기장인과 친인척 관계인 사람들이 많았고, 같은 고향에서 온 영덕 사람들도 많았다.

옹기를 만들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두루 갖추어져 있어야 하는데 외고산 옹기마을은 그 모든 조건이 충족되는 마을이었다. 주변에 질 좋은 옹기토가 많았고, 땔감 수급이 좋았고, 기온이 온화했고, 가마 짓기에 적당한 경사진 땅도 있었고, 대도시로 옹기를 실어 나를 수 있는 기차역(남창역)도 있었다. 오늘날까지 남창역이 유명한 건 1970~1980년대에 엄청난 양의 옹기가 이 역을 통해서 부산으로, 대도시로 팔려 나갔기 때문이다.

1970~1990년대까지는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 옹기 일에 매달렸다. 번창했던 옹기 사업이 말해주듯 돈벌이가 워낙 좋아 옹기마을에 사는 개들까지 입에 돈을 물고 다녔다는 재미있는 얘기도 전해진다. 옹기마을의 집과 공방들은 대부분 6·25 전쟁을 전후해서 지어졌다. 그저 생활만 할 수 있을 정도로 대충 지어진 탓에 겨울에는 너무 추웠고, 여름에는 너무 더웠으며, 공동우물은 마을 전체에 단 하나밖에 없었다.

현재 이 마을에 남아있는 2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재미난 이야깃거리가 많다. 어른들이 옹기 짓는 일로 워낙 바빠서 아이들을 돌볼 시간이 없다 보니 아기들은 흙을 주워 먹고 옹기 사이를 기어 다니면서 자랐다고 한다. 초등학생이 되면 부모님 일을 돕기 시작했는데, 주로 아침이면 옹기를 마당으로 꺼내고 저녁에는 다시 공방 안으로 집어넣는 일을 도왔으며, 겨울에는 옹기를 만지면 너무 추워서 자주 도망을 다녔다고 한다. 일은 고되고 아이들을 돌볼 시간은 없었으나, 벌이가 워낙 좋은 덕분에 그 당시 학교에서는 부모님이 옹기 일을 한다고 하면 부잣집으로 여겼다고 한다.

옹기마을 사람들은 평생 옹기 일에 종사하다 보니 거의 마을에서 크게 벗어난 적이 없고, 유난히 순박하면서도 정이 참 많다. 현재는 마을을 떠나 도시로 나간 자식들이 많고, 남창이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간 사람들도 많다. 일부 후손들이 마을에 남아서 옹기업에 종사하고는 있으나, 다른 농촌 마을이나 마찬가지로 노인 분들이 대부분이다.

‘2010년 울산세계옹기문화엑스포’가 외고산 옹기마을에서 개최되면서 옹기마을은 대대적으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열악한 환경의 집들은 현대적인 새 옷으로 갈아입었고, 옹기 파편들이 굴러다니던 시골길은 아스팔트로 포장되었으며, 전통 가마들은 지붕을 올렸고, 옹기박물관·울주민속박물관·옹기아카데미도 속속 들어서면서 원래의 옹기마을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마을 전체가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는 바람에 옛날 그대로의 옹기마을 모습이 그립기도 하고, 너무 현대화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그러나 이 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은 “울주군에 이렇게 깨끗하고 잘 정돈된 아름다운 마을이 있는 줄 몰랐다”며 감탄사를 연발하고, ‘살고 싶을 마을’이라며 “빈집은 없느냐”, “파는 땅은 없느냐”고 물어 오기도 한다.

마을을 천천히 한 바퀴 돌아보면, 온 동네가 옹기로 둘러싸여 있고 더없이 평화로워 보인다. 그뿐만이 아니다. 구석구석 이야깃거리도 많고, 시골이라 밤이 되면 개 짓는 소리가 들리고 별빛도 유난히 반짝인다. 보석같이 아름다운 옹기마을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울산시와 울주군에서 엄청난 예산을 들여 마을을 가꾸어 나가는 점도 있겠지만, 오늘날까지 묵묵히 옹기를 빗고 있는 옹기장인들과 마을 원주민들이 꿋꿋이 마을을 지키고 있기 때문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바로 이 시점, 옹기마을 주민들의 사정은 그리 좋지가 않다. 옹기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연세가 많은데다 옹기도 잘 팔리지 않아 수입도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은 별로 없고 어르신들이 많다 보니 옹기마을은 하루 종일 조용하게만 흘러간다. 봄, 가을 소풍철이 되면 일시적으로 북적거리다가도 철이 지나면 또다시 마을이 조용해진다. 옹기마을 사람들은 “15~16년 전만 해도 옹기축제라도 하면 전국의 관광버스들이 몰려들곤 했다”며 “그때가 봄날이었다”고 회상한다.

옹기에 담긴 된장, 고추장이 세월을 두고 서서히 익어가듯, 오늘도 옹기마을 사람들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이웃 간에 정을 나누면서, 전통마을의 지킴이로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김미옥 울산옹기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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