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의 훈장
국회의원의 훈장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1.12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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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TV에서 르포성 뉴스를 넋을 잃고 본 적이 있다. 1월 7일 아침뉴스 시간대에 내보낸 <국회감시 프로젝트K>의 제목은 <국회의원이 받는 상, 직접 받아봤습니다>란 뉴스였다. 공영방송 KBS 기자가 심층 취재했으니 애써 물음표 달 필요는 없겠지 싶었다. H기자가 직접 읽은 비교적 장문의 리포트는 흥미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 일부를 끄집어내 보자.

“상(賞)= ‘잘한 일이나 훌륭한 일을 칭찬하기 위하여 주는 증서나 물건 또는 돈’. 상은 무엇입니까? 포털사이트 어학사전에서 검색해보니 이렇게 나옵니다.… 그런데 이런 상, 가짜 이력과 돈을 내고 받을 수 있다면 받으시겠습니까? 게다가 같은 수상자 중에 국회의원도 있다면, 어떨까요?”

H기자는 자신의 경험담을 리포트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2019년 12월 하순에 열리는 시상식 안내를 들여다보다 ‘상에 응모하라’는 공지를 발견했습니다. 시상식 1주일 전, 주최 측에 전화해서 아직 응모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심사위원장이라는 사람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공적조서와 후원금 200(만원)을 보내면 된다’는 답이었다고 했다. H기자는 전화를 끊고 200만 원과 A4 용지 반 장짜리 공적조서 문제로 고민하다가 마침내 결단을 내린다. 취재를 위해 결행을 하기로….

“가상의 인물인 스피치학원 원장 ‘강세정’을 만들었습니다. 이름부터 나이, 경력과 봉사내용을 꾸며냈습니다. 지역과 학원명, 경력 등을 기재했기 때문에 포털사이트만 검색해도 실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최 측은 바로 눈치 챌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공적조서를 보낸 뒤 5시간 만에 ‘대상’! 그날 밤 바로 답장이 왔습니다. 사회공헌대상에 선정됐다는 기쁘고도 암울한 소식이었습니다. 입금이 늦어지자 독촉까지 왔습니다.”

H기자는 결국 200만 원을 입금했고, 1주일 뒤 시상식에 참석해 상패와 메달을 받는다. 놀라운 것은 ‘검증’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던 것. 이날 시상식에는 중소업체 수상자 수십명과 함께 국회의원 4명도 있었고, 이 중 의원 2명은 직접 참석해서 상을 받고는 기념사진까지 찍은 뒤 돌아갔다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씁쓸한 수상’이었다는 H기자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우리는 누군가 상을 받았다고 하면 ‘훌륭한 일 했구나’ 하고 우러러봅니다. 그 사람을 평가하는 객관적인 지표가 되기도 하지요.… 그래서 국회의원들도 시상식장을 몸소 다니고 몇 관왕을 자랑하며 유권자들의 마음을 홀립니다.”

H기자가 마무리를 뼈 있는 말로 했다. “‘상 준다고 불러주는데 어떻게 안 가느냐’라고만 하지 마시고, ‘큰일 한 게 없어서 못 받겠다’고 하시는 것도 겸허하고 멋진 일입니다. 선언해주실 의원님들, 기다립니다.”

굳이 장황하게 인용한 것은, 어느 한 구절 수긍 안 가는 대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얼굴에 철판 깐 기분으로 파헤치지 않았을 뿐이지 우리 주위에도 유사한 사례들을 적잖이 찾아낼 수 있다. 선거를 앞둔 시점이면 더 한층 기승을 부리기도 한다. 어느 국회의원은 지역사무국이 입주한 걸물 외벽에다 대문짝만한 현수막을 내걸기를 즐긴다. ‘OO관왕 △△△국회의원’이라고, 그것도 당당하게…. 내역을 자세히 살펴보면 모교(고교) 동문회에서 준 감사패가 포함될 때도 있다.

한번은 잘 아는 지역 국회의원 보좌관에게 국회의원들이 받는 상의 값어치를 전화로 물어본 적이 있다. 돌아온 답변이 기가 막혔다. “국회나 소속정당, 신인도 높은 사회단체에서 주는 상이 아니면 대부분 그렇고 그런, 돈 주고 받는 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아직도 그런 상에 목을 매다시피 하는 의원님이 있다는 것은, 우리네 정치판의 희극일까, 비극일까?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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