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만에 되찾은 설날과 일본제품 불매운동
90년 만에 되찾은 설날과 일본제품 불매운동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1.12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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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아침이면 온 가족이 모여 설빔을 차려입고 차례를 지낸다. 그 다음은 음복을 하고 떡국을 먹고 조상의 묘를 찾아 성묘를 한다. 차례와 성묘를 마치면 집안의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린다. 어른들은 덕담을 하며 아랫사람에게 세뱃돈을 준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나면 어른들은 삼삼오오 모여 미뤄뒀던 대화를 나누고, 아이들은 밖으로 나가 윷놀이, 널뛰기, 연날리기와 같은 전통놀이를 즐긴다.

우리 역사에서 설날의 기록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오른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백제에서는 261년에 설맞이 행사를 했다. 신라에서는 651년부터 정월 초하룻날에 왕이 조원전에 나와 백관들의 새해 축하인사를 받았다.

하지만 설날은 일본에 의해 사라질 뻔했다. 일본은 1895년 을미사변 직후 친일파인 김홍집을 중심으로 한 친일내각을 구성해 을미개혁을 추진했다. 일본이 훗날 조선을 침략했을 때를 대비해 조선의 사회체제를 일본과 동일하게 만들려고 한 것이다. 이때 일본이 사용하던 태양력이 수용되면서 1896년 양력 1월 1일이 조선의 공식적인 설날이 됐다.

일본은 음력설 쇠는 것을 막기 위해 온갖 박해를 가했다. 양력설은 새롭고 진취적이라며 ‘신정(新正)’, 음력설은 오래되어 폐지되어야 한다면서 ‘구정(舊正)’이라 불렀다. 음력설을 앞두고 고등계 형사들은 방앗간에서 영업을 하는지 감시했고, 흰옷을 입고 세배 다니는 조선 사람의 옷에다 먹물을 뿌렸다. 또 음력 설날에는 관청과 학교의 조퇴를 금지하는 등 양력설을 쇠도록 집요하게 강요했다.

안타깝게도 음력설 억제 정책은 광복 이후 우리 정부에서도 계속됐다. 양력과 음력으로 두 번의 설을 쇠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의도였는데, 음력설이 아닌 양력설 기간인 1월 1~3일까지만 공휴일로 지정했다. 허례허식이라며 음력설 추방 캠페인까지 벌였다.

일본에 이어 우리 정부도 양력설을 강요했지만 국민들은 전통을 끝내 지켜냈다. 1981년 실시한 조사에서는 음력설을 지내는 국민이 전체의 81.8%나 되기도 했다. 국민들이 지켜온 덕분에 음력설은 1985년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다. 이후 1989년 정부는 관련 규정을 개정해 음력설 이름을 ‘설날’로 바꾸고, 설날 전후 사흘을 공휴일로 지정하면서 현재 설날의 모습을 갖췄다. 일본이 1896년 우리의 설날을 없애려 시도한 이후 이를 바로잡는 데만 90년이 걸린 것이다.

지난해 일본 정부가 반도체 핵심품목 수출을 규제하는 경제보복을 강행하면서 시작된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7개월째에 접어들었다. 불매운동 초기에 일본은 한국인을 ‘냄비 근성’이라고 비하하며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면 수그러들 것이라고 장담까지 했다. 하지만 일본의 망언은 불매운동의 촉매제가 됐고, 80%가 넘는 국민이 불매운동에 참여해 자동차, 의류, 여행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인 불매운동이 이어졌다.

언론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차 판매는 불매운동이 불붙은 하반기 판매량이 45%나 쪼그라들면서 전체 판매대수가 전년보다 20% 가까이 떨어졌고, 지난해 4분기 한 항공사의 일본 패키지 실적이 82%나 줄어드는 등 일본을 향한 여행객의 발길도 뜸해졌다. 일본 화장품 수입도 절반가량 줄었고, 인기를 누리던 일본맥주는 지난해 11월 한국 수출액이 2018년 11월보다 99.1%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상을 바꾼 것은 언제나 일반 시민들이었다. 우리 정부조차 일제강점기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채 양력설을 쇠도록 요구했지만 국민은 고유의 음력설을 끝까지 지켜냈다. 일본제품 불매운동도 우리 정부가 외교적 성과를 거둘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이는 대한민국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일본 정부는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불만을 품고 경제보복을 자행했다. 자신들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는 적반하장식 태도는 여전히 변함없고,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다. 피해 할머니들의 인권과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일본 정부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 독립운동은 못했지만 앞으로도 불매운동은 계속해야 하는 이유다.

정용욱 울산 동구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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