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웨이 - 역사에 가정(假定)은 유의미하다
미드웨이 - 역사에 가정(假定)은 유의미하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1.09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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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접하다보면 가끔 아찔한 순간들이 있다. 역사에 있어 가정은 무의미하다지만 그래도 아찔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가령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이후 역사는 어떻게 됐을까라는 가정이나, 그보다 앞서 만약 세종대왕이 없었다면 한글이란 게 과연 만들어 졌을까라는 가정도 해볼 수 있겠다.

영화 '미드웨이' 한 장면.
영화 '미드웨이' 한 장면.

 

그런데 근현대사로 넘어오면 상황은 조금 달라진다. 아찔함의 깊이가 차원이 다른데 가령 1945년 8월15일 우리가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독립하지 못했다면 어찌됐을까라고 가정해보면 정말이지 아찔하다. 제대로 감정이입을 하면 심장이 살짝 내려앉기도 하는데 왜냐면 독립된 지 아직 100년도 채 안 됐으니까.

하지만 더 아찔한 건 당시 우리가 자력으로 독립을 이뤄내지 못했다는 것. 그 시절 한반도는 여러 열강들의 놀이터 같은 곳이었다. 그만큼 힘이 없었고,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의 목숨을 건 투쟁에도 불구하고 원자폭탄 두 방으로 일본 제국주의가 패망하고 나서야 겨우 독립을 이뤄낼 수 있었다. 이 얼마나 아찔한가. 그리고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미드웨이>가 달리 보이는 건 바로 이 지점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드웨이 해전’은 전쟁의 흐름을 바꾼 전투로 유명하다. 독일, 이탈리아와 함께 2차 세계대전의 주축국인 일본 제국주의는 영토 확장을 위해 1941년 12월7일 미국령인 하와이 진주만 기습폭격으로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중립 입장이었던 미국은 진주만이 공격당하자 참전을 결정하게 되고, 이듬해인 1942년 4월 미국의 폭격기대는 일본 도쿄를 공습하며 복수를 감행한다.

벌건 대낮에 천황이 있는 도쿄가 공습을 당하자 일본은 크게 당황하게 되고, 미국이라는 거인을 침몰시키기 위해 하와이 북서쪽 미드웨이 공격을 비밀리에 준비하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에 대해 잘 모르고 여기까지만 들으면 “그래봤자 일본이 감히 미국을”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태반일 듯 한데 당시 상황은 전혀 달랐다.

그러니까 전력에서 일본이 미국을 앞질렀던 것. 실제로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의 태평양함대는 항공모함 3척에 지원함 50척, 233대의 항공모함용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일본의 해군기동대는 항공모함 4척에 지원함 150척, 248대의 항공모함용 전투기를 갖고 있었다. 미국에게 있어 상황은 이보다 더 나쁠 순 없었던 것.

하지만 정보력에서 앞섰던 미국이 암호해독을 통해 일본의 미드웨이 공습 계획을 사전에 알게 되면서 기습 공격을 통해 승리하게 된다. 미드웨이 해전의 승리로 승승장구하던 일본의 해군기동대는 기세가 꺾이게 되고 태평양 전쟁의 흐름은 미국으로 넘어가게 됐다.

그리고 영화 <미드웨이>는 일본의 진주만 공습부터 미드웨이 해전에 이르기까지의 전투과정을 역사적인 사실을 토대로 있는 그대로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당시 태평양함대를 이끈 니미츠 제독을 비롯해 자신의 목숨까지 용감하게 내던졌던 수많은 영웅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곧 우리의 영웅이기도 했다. 왜? 미드웨이 해전에서의 승리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독립은 없었거나 한참 늦춰졌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 역사에서 가정이란 게 무의미할까. 가정이라는 걸 해봐야 다시는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지 않을까.

1994년 한 스포츠신문에 연재돼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만화 가운데 이현세의 <남벌>이라는 작품이 있다. 일본이 태평양전쟁 때처럼 에너지 위기를 기회삼아 다시 전쟁을 일으켜 영토 확장에 나서자 남과 북이 힘을 합쳐 일본의 침략에 맞선다는 게 스토리의 주된 골격이다.

그런데 이 만화는 2013년 12월에 발간 20주년을 맞아 인터넷판으로 다시 출간됐다. 작가인 이현세씨는 20년만에 다시 출간된 인터넷판 서문의 시작과 끝을 이렇게 적고 있다.

“20년 전 처음 이 만화를 기획했을 때 일본의 재무장에 대한 우려는 단지 황당한 이야깃거리일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웃을 수 없다. 지나간 역사에서 가장 확실히 배울 가치가 있는 것은 인간들이 망각과 실수를 반복하는 참으로 멍청한 존재라는 것이다.”

2019년 12월 31일 개봉. 러닝타임 136분.

취재1부 이상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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