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도 듣는 말
쥐도 듣는 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1.0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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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길게 늘이면 ‘마알’, ‘마음의 알갱이’라는 뜻이 된다. 그 사람의 마음이 고스란히 말로 전해진다는 것을 ‘말’이 알려주는 셈이다.

지난 겨울, 나는 누군가의 말에 너무나 큰 상처를 받았다. 밥을 먹어도 마치 모래를 씹는 것 같았고, 눈을 붙여도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었다. 이석증과 이명 증세까지 생겨 힘든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병원에서 처방해 주는 약도 효과가 없었다. 머리가 터질 듯이 아프고 하루 종일 멀미를 하는 듯 어지러웠고, 증세가 심할 때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상대방은 무심코 던진 말이었을지 모르나, 상처가 되는 말은 심장을 찌르는 화살이 될 수 있다. 자존감마저 무너져 내릴 것 같았던 그때가 어쩌면 여태껏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오래전 친정엄마가 외갓집 안방에 드나들던 쥐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었다. 문풍지 사이로 황소바람이 들어오던 겨울밤, 외삼촌들이 잠든 후 어린아이였던 엄마는 할머니와 나란히 누워 있었다고 한다. 무언가 뽀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 몸을 움츠렸는데 방 안에 쥐가 들었다. 장롱 위에 쌀과 보리쌀을 바가지에 담아 올려놨는데, 그걸 먹기 위해 들어온 것이었다. 그때 외할머니가 마치 기도라도 하듯 몇 번이나 간절히 부탁하더라고 했다.

“아그님, 아그님! 우리 집에는 먹을 게 별로 없습니다. 저 부잣집 창고에 가면 쌀도 많고 보리쌀도 많이 있으니 거기 가서 잘 먹고 사세요”

친정엄마는 쥐를 향한 외할머니의 공손한 대우가 신기하면서도 낯설어 잊을 수가 없었는데, 더 놀라운 것은 그날 이후로 안방에 쥐가 한 번도 들어온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귀히 여기시던 외할머니의 마음을 쥐도 알아차리고 옮겨간 것이었을까.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이 있다. 말은 언제나 새어나갈 수 있으니 말조심하라는 뜻이다. SNS와 동영상 공유 웹사이트가 늘어나면서 말하기는 소통의 범주를 넘어 내 말을 들어라, 새야 들어라, 쥐도 들어라며 거리낌이 없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했던 말의 발자국들을 되짚어 본다. 본의 아니게 누군가는 내가 한 말에 상처를 받은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학창시절, 이해인 수녀님의 <말을 위한 기도>라는 시를 필사해 코팅해서 지니고 다니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참으로 아름다운 언어의 집을 짓기 위해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도를 닦는 마음으로 말을 하게 하소서

언제나 진실하고 언제나 때에 맞고

언제나 책임감 있는 말을 갈고 닦게 하소서

내가 이웃에게 말을 할 때는

하찮은 농담이라도

함부로 지껄이지 않게 도와주시어

좀 더 겸허하고

좀 더 인내롭고

좀 더 분별있는

사랑의 말을 하게 하소서

내가 어려서부터 말로 저지른 모든 잘못

특히 사랑을 거스르는 비방과 오해의 말들을

경솔한 속단한 편견과 위선의 말들을

주여, 용서하소서…” (하략)

풍요와 희망의 상징인 쥐의 해, 쥐도 알아듣는 귀한 말들을 주고받았으면 좋겠다. 그 옛날 외할머니가 뿌린 말의 씨앗이 쥐도 감동시켰듯이 나 또한 누군가의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따스하게 녹여주는 한겨울의 난로 같은 말을 나누고 싶다. 진실한 마음의 알갱이를 만들어 내려면 수양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천애란 사단법인 색동회 울산지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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