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형 칼럼] 고인돌 왕국
[이노형 칼럼] 고인돌 왕국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1.0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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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분포도는 주장들에 따라 유동적일지라도 세계 고인돌의 절대다수가 우리 한반도 안에 자리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재의 고인돌들도 이곳에 있고 김해 지역 350톤짜리는 현존 세계 최대의 고인돌이기도 하다.

고인돌은 지배계급의 권위나 권력욕을 과시·실현하려고자 강행된 지배자의 무덤일 수가 있다. 동시에 거기에는 평화를 수호하거나 생활적 효율을 높이고자 하는 공동체적 요구를 공유하는 차원에서 정치적 우두머리를 받들고자 하는 공동체적 꿈까지 포개져 있을 수도 있다.

고인돌에 새겨진 형상들을 만일 여성의 생식기로 이해한다면 고인돌은 풍요와 다산의 꿈을 반영한다. 별자리로 이해할 경우 그것은 농경에 요긴할 시간과 계절, 절기의 변화나 흐름을 알려줄 별자리의 이치를 풀고자 하는 천문학적 꿈을 반영한다. 태초의 천문대일지도 모른다.

어느 쪽의 쓰임새이든 간에 그러한 꿈들의 실현을 위한 고인돌 제작은 거대한 정신적, 물질적 힘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즉 그들은 개인이나 소집단의 분산된 힘들을 통일적으로 모아내고 발휘할 줄 알아서 그러한 힘을 담보해 줄 주인공이자 전 시대와 구별되는 집단인 거대한 사회집단을 창출해낸 것이다. 이 땅이 고인돌 왕국이라면 그것은 적어도 세계 고인돌문명권의 차원에서는 이곳이 당대 인류문명사의 중심지라는 문명사적 사실을 말해준다.

울산의 두서 쪽에 고유어로 ‘오방구마을’로 불리던 마을이 있다. 그 이름은 마을에 큼지막한 바윗돌 다섯 개가 있었던 데서 비롯된다. 현재 다섯 개의 고인돌 중 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된 돌은 마을 뒤 논두렁에 놓인 바둑판 모양의 고인돌 하나뿐이다. 하나는 논흙 속 깊숙이 묻혀 있고 다른 하나는 콘크리트 마을길 속에 파묻혀 있다. 또 하나는 어느 가정집의 정원에다 옮겨놓았는데 예쁘장하게도 쇠망치로 둘레를 매끄럽게 다듬어 놓은 상태다. 다섯 번째 고인돌은 산산이 깨어져 마을길 공사 때에 잔돌들로 사용된 모양이다. 수천 년의 시간들이 한순간 잔돌로 부서지거나 꽃밭 돌로 변하고 만 셈이다. 마을 이름도 지금은 신기마을로 변해 있다.

고인돌들이 상처를 입게 된 결정적 계기는 새마을운동이었다. 앞뒤 가리지 않은 채 마을길을 넓히거나 지붕을 개량하는 등의 맹목적인 마을 개량 운동이 빚어낸 사태라 하겠다. 그 시기를 전후하여 전국적 범위에서 추진된 불도저, 포클레인 등의 중장비를 동원한 급속한 경제개발은 수천 수만 년을 고스란히 보존해 오던 산더미 같은 문화재를 한순간에 박살내 버렸을 수 있다. 한강의 기적의 중심인 울산이 이른바 산업수도로서의 명성을 가져오는 대신 세계문화재의 으뜸일 암각화를 수장시켜 버린 사태도 그런 사례이다.

문화재를 포함한 문화관광자원에서 울산은 여전히 열두 폭 치마인양 여유로운 도시이기도 하다. 낙동정맥 우뚝한 연봉과 대왕암, 간절곶 푸른 바다, 도심지를 흐르는 강물을 따라 전개되는 유장한 대숲이며 각종의 철새 떼, 모천회귀성 물고기 떼가 있고, 암각화에서 고래바다로 이어지는 고래의 전설 등 든든한 문화관광자원들이 있다. 4차 산업혁명이며 불경기의 뒤안길로 끝내는 접어들 산업들, 방방곡곡의 고향을 떠나 내 나라와 가족을 먹여 살리고자 청춘들을 묻었고 철거민들은 눈물과 애환을 묻어야 했던 공단들도 문화적 도시재생의 기획에 따라서는 세계적인 문화관광명소로 변모될 수가 있다. 수장된 암각화를 건져 유네스코에 등재할 경우 울산의 문화관광자원의 품격이야 더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이노형 고래문화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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