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규의 황칠 이야기 ②] 황칠나무를 연구하게 된 배경
[최명규의 황칠 이야기 ②] 황칠나무를 연구하게 된 배경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1.0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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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초 경기도 부천의 한 병원에서 임상병리사로 일하다가 1996년부터 한동안은 울산에서 연구직 공무원 생활을 했다. 그러나 두 직종 모두 만족스럽지가 못했다. 그 후 울산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바이러스 암학을 공부하다가 깨달은 것은 현대의학의 한계성이었다. 결핵에 걸려 거의 1년간 항생제 신세를 지던 무렵 위염에 시달린 경험도 그런 깨우침을 주었다.

‘대체의학’에 눈을 뜬 것은 그 때문이었다. 건강에 대한 집념으로 주말마다 영남알프스를 찾았다. 산행에 나서다 보니 울산과 경남을 아우르는 영남알프스가 울산 미래 먹거리의 텃밭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산악 중심 관광산업과 캐나다, 미국 등지의 대체의학에 관심을 가진 것도 이 무렵의 일이었다.

그러던 중 울산시상수도사업본부 수질검사실 직원으로부터 황칠나무의 우수성에 대한 얘기를 듣고 귀가 솔깃했다. 우리 고유 수종인 황칠나무의 매력에 빠져드는 계기가 된 것이다. 황칠나무에 대한 자료 수집과 특성 연구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산림조합 직원에게는 황칠나무를 울산에서 심어본 적이 있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돌아온 것은 기후조건이 안 맞아서 실패할 거라는 말뿐이었다. 하지만 필자에게 실패 얘기는 새로운 도전의 자극제가 되었다. 산림조합 직원에게는 3년 후에 보자는 말을 남기고 헤어졌다.

우선 ‘황칠의 메카’로 소문난 완도에서 황칠나무 1년생 200그루를 사서 영남알프스 산자락의 작은 농장에다 심었다. 매일 새벽과 저녁, 남구 무거동 자택과 울주군 상북면 농장을 출퇴근하다시피 오고갔다. 그러나 실험재배는 실패와 좌절을 남겼다. 초기실험에서 애지중지하던 황칠나무 약 3만 그루가 죽어 나갔다. 그렇다고 도전을 멈출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마침내 뿌리를 튼튼하게 해주는 액비 제조기술을 터득하게 되었고, 도전은 성공으로 막을 내렸다.

그 다음에는 난대성식물인 황칠나무가 영남알프스의 겨울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도록 정성을 쏟았다. 묘목을 키워 얻은 씨앗으로 파종하는 기술도 터득했다. 3년이 지나면서 느낌이 왔다. ‘드디어 성공했다’는….

지금은 육박나무, 비파나무도 키우고 있다. 2017년에는 황칠나무 묘목 재배기술 특허를 출원해 황칠제품 특화의 길을 열었고, 육박나무는 천연항생제 기능성 시험도 거쳤다.

그동안 황칠나무 공부를 참 많이도 했다. 황칠나무가 심혈관질환을 예방하고 호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얼마 전에는 건강보조식품으로 개발한 황칠제품을 언양시장에 내놓았더니 반응이 의외로 좋았다. 육박나무는 가려움증·염증 치료에 도움 되는 건강보조식품으로 자리를 매겨가고 있다.

요즘은 황칠제품이 울산 바이오산업의 소재로 활용될 수 있겠는지 하는 과제를 놓고 씨름하는 중이다. 황칠나무와 매트를 접목시키는 문제는 이미 고민을 접고 출시를 준비하는 단계에 와 있다. 최근에 나온 특허나 논문들은 황칠이 전자파 흡수 기능도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다. 그래서 시도한 것이 ‘원적외선 온열치료 금맥 탄소매트’로 국내특허를 따낸 김지명 ‘금맥’ 대표와의 만남이었다. 그와 손잡고 만드는 ‘영남알프스황칠 금맥매트’와 베개가 시중에 선보일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최명규 ‘영남알프스황칠’ 대표·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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