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랑 18세’
‘낭랑 18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1.05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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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고리 고름 말아 쥐고서/ 누구를 기다리나 낭랑 18세.…”

작곡가 박시춘(1913 ~1996)이 짓고 가수 백난아(1927~1992)가 부른 ‘낭랑 18세’ 노랫말의 첫 소절이다.

1949년에 나왔다는 이 노래의 제목이 최근엔 MBC ‘복면가왕’의 참가자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던가. 가수 현철과 문희옥, 한서경, 김영임이 다시 끄집어내 불렀고, 2003년 6월엔 KBS 드라마시티, 2004년 1월~3월엔 같은 방송사 월화드라마의 제목으로도 쓰였으며, 코미디영화 <영구와 땡칠이>(1989)에서는 영구의 애창곡이 될 정도로 재활용의 폭이 넓다.

도대체 무슨 뜻이기에? 뚜껑을 열어보니 뜻풀이가 몇 갈래로 나뉜다. 첫째, ‘낭랑(朗朗)’은 ‘밝을 낭, 명랑할 랑’의 한자말로 ‘청춘(靑春)’을 뜻한다. 둘째, ‘낭랑’은 ‘소리가 맑고 또랑또랑하다’, ‘빛이 매우 밝다’라는 뜻의 ‘낭랑하다’의 어근(語根)으로 ‘청춘’을 뜻한다. 셋째, ‘낭랑(娘娘)’은 ‘왕비나 귀족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세 번째 풀이는 좀 억지 느낌이 짙지만, 셋 모두 긍정의 뜻풀이란 점에서는 같다.

그런데 요즘 이 말이 뜨거운 감자다. 지난달 27일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투표할 수 있는 나이가 만 19세에서 18세(2002년 4월15일 이전 출생)로 낮춰진 탓이다. 뜻밖에 투표권을 쥐게 된 ‘낭랑 18세’는 어림잡아 전국에 50만명, 고3은 5~6만 명이다. 국회 본회의 통과 이틀 전(12월 25일) 늦은 밤, 필리버스터 마지막 주자 김태흠 의원(한국당)이 발언종료 6분을 남기고 한 발언과 당시의 상황을 잠시 되짚어 보자.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고등학교가 정치예외지대에서 정치태풍지대로 변하고 전교조 교사들의 그릇된 교육, 교실의 선거판화로 학교 교육은 심각한 피해를 겪을 것입니다. 만약에 나쁜 후보가 고3 학생들에게 돈이나 살포한다면 이 나라 어떻게 되겠습니까?” ‘만약에’라는 조건이 붙긴 했지만, 자리를 지키던 민주당, 정의당 의원석에선 항의가 속사포처럼 쏟아졌다. “그것 받고 투표할 고3 아무도 없습니다. 애들 그렇게 폄훼하지 마십시오”, “청소년들, 그렇게 주관이 없는 줄 아세요?”, “다들 자기 같은 줄 아는 모양이지” 설전(舌戰)은 계속 꼬리를 물었다. “상상력이 불순하다”, “사과하라!”, “뭘 사과해?”….

같은 주제의 입씨름은 지금 이 시각에도 여전히 뜨겁다. ‘낭랑 18세 선거교육’에 대한 고민은 정치권에서도 교육현장에서도 깊어만 간다. 그 와중에 선수(先手)를 친 주인공이 있었다. 서울시교육청이다. 지난달 22일 그랬다니 선거법 개정안의 무사통과를 족집게처럼 예감하고 있었을 법하다. 4월 총선에 맞춰 ‘모의 선거 프로젝트 학습’을 실시할 40개교를 미리 정해 놓았다고 발표한 것이다. 학습 대상에는 고등학교 19곳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10곳, 중학교 11곳도 포함시켰다.

이를 눈치 챈 문화일보 논객은 12월 18일자 사설에서 공격의 포화를 모질게 퍼부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자신과 같이 좌편향의 친(親)전교조일 뿐 아니라, 선거범(犯)이기도 한 곽노현 전 교육감에게 학생 선거교육을 맡겼다”는 표현을 구사했다. “이성(理性)마저 잃은 처사로, 그 저의(底意)가 의심스럽다”는 독설도 곁들였다. 이른바 ‘이념 논쟁’에 불을 붙인 셈이다.

그럼에도 울산에서는 아직 ‘바스락’ 소리도 없다. 교육부의 세부지침이 내려오기를 기다렸다가 대응해도 늦지 않다는 것일까? 그러나 ‘등불 든 신부’처럼 항시 예비하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선거연령의 하향조정이 또 다른 국론분열의 불씨가 되지 않도록 교육당국이나 사회지도층이 지혜를 모아야 때다. 정치·이념편향이 아니면서도 ‘낭랑 18세’들에게 새로운 깨우침을 선사할 수 있는 그런 지혜를….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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