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형 영어교육’ 워크숍을 다녀와서
‘울산형 영어교육’ 워크숍을 다녀와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2.29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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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형 영어교육’을 위한 초등영어전담교사 워크숍이 지난 20~21일 경주 힐튼호텔에서 열렸다. 연수 장소는 교장 워크숍이 자주 열린다는 곳이었고, 진행 방법은 교사 중심의 원탁토론이어서 파격적이란 느낌마저 들었다.

울산형 영어교육의 모델은 비영어권 국가에서 영어를 제일 잘한다는 핀란드다. 어순이 우리말과 비슷한 우랄알타이어계이지만 영어방송을 더빙해서 내보낼 만큼 내수시장이 크지 않아 수입된 영어방송을 그대로 내보내는 나라다. 공중파 TV 방송을 볼 수밖에 없는 환경이 핀란드인들의 놀라운 영어실력을 만든 비결이라고 한다.

울산형 영어교육의 목표는 초등학생들이 영어를 들을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드는 데 있다. 교육의 초점은 교사와 학부모의 적극공조, 교사수업준비모임의 활성화,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만드는 듣기용 콘텐츠 제작, 매일 듣는 시간이 즐겁고 다음날 수업시간에 한국어로 설명하기 위해 듣는 영어에 맞추어진다. 물론 이 모든 것이 획일적으로 강요되지는 않는다. 이 정책은 교사들의 모임을 지원해주고, 교육과정을 교사들이 수업준비모임을 통해 개발하도록 돕는 개혁정책이어서 교사로서 자부심을 느낀다. 과거에는 이런 정책이 없었다.

울산교육연수원장은 교사모임은 물론 학부모, 시민들의 인식 전환도 교육행정을 통해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교사들의 집단지성이나 전체교사의 공동연구 프로젝트처럼 교사들이 만드는 교육과정은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교육현장에서 영어정책의 변화를 바라보는 초등교사들의 시각을 대신 전해본다.

첫째, ‘교사 중심’이라는 말이 실감나도록 의견을 설문지로 수렴하기보다 현장을 교사의 시각으로 보는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사직급이 장학사가 되었다가 다시 교사로 돌아오는 ‘순환보직(임기제) 장학사’ 제도가 제일 바람직하다.

올해 영어전담교사 대상 설문조사에서 ‘초등영어연극제’가 폐지대상 1순위에 올랐다. 2009년부터 시작된 연극제가 한동안 순항할 수 있었던 것은 연극지도예산과 소품구입비의 충분한 지원 덕분이었다. 그러나 2015년에는 관련예산이 전액 삭감되었고, 연극제는 교사들의 요청과 장학사의 아이디어로 영상을 CD로 녹화해서 제출하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가까스로 유지될 수 있었다.

이렇게 애착이 많이 간 연극제였지만 교육청 예산은 전무한 가운데 최소한의 물품구입비만 학교영어예산으로 충당하게 되면서 교사들이 사재를 털어 지도하는 상황도 나타났다. 하지만 영어연극제를 주저앉게 만든 결정적 요인은 교육청의 승진가산점 제도였다. 연극제에 참가한 영어연극 지도교사의 70%가 승진가산점을 받았지만, 나머지 30%는 ‘하위 30%’로 낙인찍혔기 때문이다.

둘째, 초등교사 설문조사 결과 초등영어연극제가 폐지대상 1순위에 오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대부분 승진이나 포상과는 상관없이 연극지도에만 열정을 가진 영어전담교사들에게 교육청 지원은 0원이면서, 하위 30%의 교사가 누구인지 드러나게 되는 적폐행정을 가볍게 여긴 때문이다. 이는 교사직급을 우습게 보는 승진관료 시스템이 낳은 불행이다.

교육청은 이 제도를 동아리 활성화를 위해 애쓰는 교사들에게 승진가산점을 준다는 좋은 취지로 만들었다. 그러나 체육, 예술, 과학, 영어 대회에서 입상권에 들고 싶거나 하위 30%에 해당되지 않으려다 보니 이상한 풍토가 생겼다. 즐겁게 지도하던 교사들도 승부에 목숨을 걸고, ‘하위학교’ 낙인이 두려워 막판에 기권하는 교사까지 생겨난 것이다. 이런 것들이 현장교사의 눈이 아니면 어찌 보이겠는가. 대회가 과연 교사들이 싫어해서 찬밥신세가 됐는지, 본질을 바로 보기 바란다.

교육이 장학행정에 좌지우지되면 교사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보이지 않는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이것이 동아리 지도 승진가산점이었고, 교육을 망치는 병폐가 되었다고 본다. 이번 워크숍에 참가한 교사들은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 승진가산점이나 던져주고 열심히 하라든지, 열심히 하면 다른 직급으로 옮길 수 있다는 소리는 전혀 없는, 교사들만의 워크숍이었고, 교사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장학행정의 순수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유성용 울산초등학교 교사, 울산교사노조 교섭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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