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소환이 능사는 아니다
주민소환이 능사는 아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2.26 21: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단체장이나 지방의회 의원을 선출하는 투표가 있다면 이들을 끌어내리는 투표도 있다. ‘주민소환제’다.

최근 들어 지방자치단체들이 주민소환투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가장 관심을 끌었던 곳은 포항시의회였다. 포항 오천읍 생활폐기물 에너지화 시설 가동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지역구 시의원 2명을 대상으로 주민소환투표를 추진하면서 포항시가 시끄러웠다. 주민소환제 규정에 따라 전체 유권자 중 3분의 1 이상이 투표에 참여하고, 그 중 반수 이상이 찬성하면 대상 시의원들은 의원직을 상실하게 되지만, 투표율이 21.7%에 그쳐 개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서 결국 공염불에 그치고 말았다.

주민소환투표로 남은 건 결국 상처와 갈등. 또 5억1천만원이라는 적지 않는 돈을 주민소환투표 관리를 위해 선거관리위원회에 지급해야만 했다. 비용은 비용대로 사용하고도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 채 갈등의 골만 깊어진 셈이다. 충청북도에 위치한 보은군도 최근 주민소환투표로 시끄럽다.

정상혁 보은군수는 지난 8월 울산에서 열린 이장단 워크숍에서 “일본 배상금으로 한국 경제가 발전했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은 우리만 손해”라는 등의 잇따른 친일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이에 주민들은 ‘정상혁 보은군수 퇴진 운동본부’를 꾸려 현재 주민소환 절차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해당 지역에서는 최종 주민소환 투표 때까지 총 7억원 정도의 비용이 투입될 것이라는 언론 보도 등이 잇따르면서 주민소환 투표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리 곱지만은 않다.

이런 가운데 울산에서도 최근 주민소환투표 소동이 발생했다.

대표 잠적으로 운영 중단 6개월째인 동구 동부회관의 정상화를 두고 남목 주민들과 동구청 간에 갈등이 발생하면서 주민들이 정천석 동구청장에 대해 주민소환 투표를 추진한 것. 주민들은 울산시가 동부회관 매입비와 시설 개·보수비 지원을 약속한 만큼 공공시설 전환을 요구했지만 구청이 소극적인 자세로 임한다면서 주민소환 투표를 추진했다.

다행히 지난 23일 구청장과 주민대표들이 만난 간담회 자리에서 주민들이 요구해왔던 동부회관의 공공시설 운영과 남목권 체육센터 건립에 대해 정천석 청장이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으면서 주민소환 투표 청구인인 동부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주민소환을 전격 철회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하지만 울산 동구에서 벌어진 주민소환 소동도 약간의 상처를 남겼다.

동구청은 주민과의 마찰로 빚어진 1주일간의 주민소환 절차에 대한 필요경비를 선관위에 지급해야 했다. 지급 명목은 지난 20일께 인쇄 완료한 주민소환 서명부 제작비 275만원과 공표일인 지난 23일 투입된 인력의 하루 인건비 등이다. 만약 주민소환이 철회되지 않았다면 동구는 서명 작업에 필요한 감시·계도요원 인건비와 운용비 등 약 3억8천여만원, 또 투표 준비와 시행에 들어가는 약 10억원까지 총 14여억원을 구민들의 혈세로 메울 뻔 했다.

2007년 지역 현안 갈등 해결이나, 단체장과 지방의원 견제를 위해 주민소환제가 도입됐다. 하지만 이 제도가 제대로 기능한 사례는 미미하다. 실제로 주민소환제도가 도입된 이후 전국적으로 지금까지 109건이 추진됐지만 투표까지 이어진 것은 단 10건뿐이다. 10건도 단 2건만 가결돼 실제 소환됐고, 나머지 8건은 포항시처럼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개표조차 못 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법령에 소환이유를 더 합리적이고 명확하게 규정하고,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논의기구를 설치하는 등 제도적인 개선 방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제도보완도 좋겠지만 이번 울산의 사례가 암시하듯 대화로 풀어나가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

박선열 편집국장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