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그들을 행복하게 만드는가?
무엇이 그들을 행복하게 만드는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2.25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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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적정 규모의 관광객 수를 유지하기 위해 하루 체재비로 250달러(비수기에는 200달러)를 내고 정부가 지정한 여행사를 통해 가이드를 동반해야만 여행을 할 수 있는 나라 2) 절대왕권을 지녔지만, 왕실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호의적이며 긍정적이었고, 후대에 혹여 폭군이 국민들을 못살게 굴어 나라의 존립이 위태로울 것을 걱정한 국왕이 스스로 민주주의를 도입하자고 국민들을 설득해 세계에서 유례없는 혁명 없이 입헌군주제를 도입한 나라 3) 신호등을 잠시 설치했었지만, 인간미가 없고 주변 경관에 비해 자연스럽지 않다고 생각해 철거하고, 첫눈이 오면 전국의 관공서를 임시 공휴일로 지정해 가족과 함께 낭만을 즐기는 나라

동화 속 이야기에서 나올법한 이 나라는 올해부터 울산광역시교육청이 공적개발원조(ODA) 교육정보화 지원사업을 진행하는 히말라야산맥에 위치한 부탄이다. 교육정보화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현지 교원 정보화 연수를 진행하기 위해 부탄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물질적 풍요 없이도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곳이 과연 있을까?’라는 의구심도 잠시, 깎아지른 듯한 협곡들 사이로 곡예에 가까운 비행을 한 비행기가 우릴 내려준 곳은 부탄의 유일한 국제공항인 파로(Paro) 공항. 6일 동안 우리와 함께할 가이드는 ‘소남’ 이라는 단정하게 생긴 청년. 길거리 곳곳에 걸린 가게 간판에서도 그의 이름을 볼 수 있어서 혹시 이름에 담긴 뜻이 있냐고 물었더니 부탄에서는 흔한 이름이고 ‘행복’을 뜻한다고 한다. 매일 불리는 이름마저 ‘행복’이라니… 그제야 뭔가 부탄에 왔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설렘도 잠시, 자유여행이 활성화된 나라도 아니고 학교 환경에 대한 정보도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올해 8월에 MOU를 체결하고 두어 달 만에 현지 연수를 진행해야 하는 입장인지라 만약 인터넷 접속이 여의치 않다거나 컴퓨터에 문제가 생길 경우 등 다양한 변수에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에 어깨가 무거워져 가며, 그렇게 부탄에서의 첫날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이튿날 아침, 첫 교원 연수를 위해 방문한 전통 양식으로 지어진 아담한 학교의 복도와 교실을 거닐며 나무 바닥이 들려주는 오래 전 국민학교 골마루를 거닐던 소리, 그리고 서른 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부탄 전통 의상인 고와 키라를 입은 선생님들의 따뜻한 미소가 담긴 인사와 함께 오래 알고 지내던 친구를 만나러 온 것처럼 푸근하고도 온화한 분위기 속에서 그렇게 부탄에서의 첫 공식 일정이 시작되었다. 머나먼 한국이란 나라에서 ‘소프트웨어 교육’이란 낯선 주제를 가지고 온 우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교구를 직접 체험해보는 가운데 모국어인 종카어 수업시간을 제외한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는 부탄의 교육체제는 큰 도움이 되었다. 처음 접하는 낯선 단어들을 영어로 설명하고, 수업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를 주고받는 가운데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열정적으로 만들었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앞으로 진행될 교육정보화 지원사업의 가능성과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저는 내년에 정년퇴임을 하지만,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위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수업에 적용하길 바라는 마음에 우리 학교를 방문해달라고 (교육부 관계자에게) 부탁을 드렸습니다.” 두 번째 방문한 학교 교장 선생님의 환영 인사 속에서 그 답을 찾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마 여기저기서 지원받았으리라 생각되는 각양각색의 30대 남짓한 컴퓨터가 있는 인근 지역 유일의 컴퓨터실, 우리라면 아마 몇 년 전에 폐기했을 사양이지만 그래도 이런 컴퓨터가 있어서 아이들과 ICT 수업을 할 수 있다는 한 선생님의 미소 속에서 행복이란 낱말을 떠올렸다면, 너무 억지스러운 걸까? 물론, 물질이 행복을 보장해 줄 수는 없겠지만 부탄의 아이들이 조금 더 좋은 여건에서 ICT 수업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전 국토의 60% 이상을 삼림으로 보존하도록 의무화하며, 새로 건축물을 만들 때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지어서 전통을 계승하도록 하고,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 같은 과장된 친절은 아니지만, 길거리에서 만나면 미소를 지어주면서 과하진 않지만 몸에 배어 있는 상대를 배려하는 행동들. 아마,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생활화된 사회 분위기가 부탄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향후 교류협력에 대한 면담 도중 “국장님께서도 한국에 한 번 오셔야죠?”란 질문에 대한 부탄 교육부 국장님의 대답이 아직도 귓가를 맴돈다. “한국은 ICT 강국이고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가서 이를 배우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더 많은 교사가 한국에 가서 ICT 교육을 받고 와서 우리 아이들을 위한 수업을 설계하고 교육방법에 적용하기를 원합니다.”

정준형 강남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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