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과 종교간의 화합
성탄절과 종교간의 화합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2.2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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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들은 12월 24일을 성탄전야(聖誕前夜), 크리스마스이브(Christmas Eve)라고 부른다. ‘성탄절 전날의 거룩한 밤’ 쯤으로 풀이해도 좋을 것 같다. 필자가 어릴 때 다니던 자그마한 마을교회만 해도 성탄전야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넘쳐났다. 성극(聖劇)과 성가(聖歌)합창이 그랬고, 자정 무렵 허기를 달래주던 닭백숙과 성탄절 새벽을 깨우던 새벽송도 그런 기쁨과 즐거움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그러나, 격세지감이랄까, 지금은 너무 많이 달라졌다. 12월 초입부터 거리를 휩쓸던 크리스마스캐럴도 이젠 멀어져간 지 오래고, 크리스마스트리(聖誕木)를 보기도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워진 세태다. 고개를 치켜들지 못하는 경제사정 탓일까, 저작권 시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 아니면 배타(排他)의 울타리를 치려는 기독교에 대한 사회인식의 변화 때문일까?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지난 12일 오후 울산 태화로터리에는 이름만 ‘연말연시 트리’로 바꾼 장식물 하나가 등장했다. 세밑 들어 처음 선보인 이 장식물은 경자년(庚子年) 새해 2월 2일까지 오후 5시 30분~12시 사이 로터리 주변을 신비스러운 빛으로 장식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특정 종교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울산시에 항의가 쏟아진 것이다. 장식물 꼭대기에 십자가(十字架)를 매단 것이 화근이었다. ‘십자가’라면 예수를 처형한 고대 로마의 형벌기구이자 기독교 신앙의 상징이 아니던가? 어떤 이는 ‘별’을 달지 왜 ‘십자가’냐고 트집 잡았다는 소리도 들려왔다. ‘별(☆)’ 장식 역시 ‘동방박사 세 사람’을 인도했다는 ‘베들레헴의 별’로, 성탄절 주요 장식물로는 십자가에 버금가는데도 그랬다니….

하지만 의문은 얼마 안 가 곧 풀렸다. 울산기독교연합회의 요청에 따랐다는 것. 울산시는 성탄절 이틀 뒤인 27일까지만 달 터이니 참아 주십사하고 통사정도 한 모양이다. 그 의미가 ‘부처님 오신 날’에 다는 연등(燃燈)과 다르지 않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사실, 해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거리 곳곳을 장식한 연등을 둘러싸고 시비가 붙었다는 소리는 여태 들은 기억이 없다. 기독교인들도 석탄일(釋誕日)에 즈음한 연등 달기를 세시풍속의 하나로 인정한 증거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십자가 장식물을 콕 찍어 시빗거리로 삼았다니, 과연 누가 그랬을까?

솔직히, 특정 종교에 대한 거부감은 ‘일부 보수 기독교단’이 제일 심하다는 평가가 있다. 불교의 불상(佛像)이나 가톨릭(천주교)의 성모상(聖母像)을 기독교에서 금기시하는 우상(偶像)으로 여기고 이를 받드는 신앙인을 ‘적그리스도(敵Kristos)’ 무리로 단정 지으려는 것은 아닐까? 그러다보니 길거리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줄기차게 외치면서 스스로를 배타(排他)와 독선(獨善)의 우물 안에 가두려 한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 전체가 다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최근 들어 다른 종교인들끼리 서로를 존중하는 일이 늘어나는 게 대세인 것 같다. 가장 상징적인 사례가 대한불교조계종이 지난 20일 오후 서울 조계사 일주문 앞에서 성탄목 점등식을 스무 번째로 가진 일이다. 행사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 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김영주 목사도 자리를 같이했다.

원행 스님은 ‘예수님 오신 날 축하메시지’를 통해 “사랑과 평화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 탄신을 축하드린다”고 말했다. “예수님 탄신의 거룩한 뜻을 실천하여 이웃을 사랑하고, 이 사회에 가난과 차별로 인한 아픔이 더는 없기를 바란다”고 말도 덧붙였다. ‘예수님 오신 날’에 다시 듣고 싶은 말씀이어서 한 번 인용해 보았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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