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 V 페라리 - 인생에서 퍼펙트랩은 존재할까?
포드 V 페라리 - 인생에서 퍼펙트랩은 존재할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2.19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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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드 V 페라리' 한 장면.
영화 '포드 V 페라리' 한 장면.

 

마라톤 같은 달리기가 됐든 혹은 자동차 경주가 됐든 레이스라는 게 인생에 자주 비유되지만 프랑스의 르망에서 매년 열리는 ‘르망24시간 레이스(이하 르망24)’는 인생 그 자체를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소한 분들을 위해 잠시 소개하자면 1923년부터 시작된 르망24는 해마다 동원되는 관객수만 70만명에 달할 정도다. F1(포뮬라1) 그랑프리? 어딜 감히! 명함도 못 내민다.

르망24는 일단 경주 방식에서 독보적이다. ‘24’라는 숫자가 의미하듯 24시간 동안 레이스가 이어지는데 드라이버(운전자)는 교체가 가능하지만 차는 교체가 불가하다. 그러니까 계속 쉬지 않고 24시간을 달리기 때문에 참가자들에게는 일단 가장 잘 버티면서도 가장 빠른 차를 만들어야 한다는 과제가 주어진다. 그런데 이게 모순이다. 속도와 고장은 비례하기 때문. 참! 사고도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은가? 빨리 달리다보면 차에 무리가 가게 되고, 그러다보면 차는 고장 나기 십상이다. 또 사고도 잦아진다. 현실에서 빨리 달릴수록 고장도 안 나고 사고도 안 나는 차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건 인생도 마찬가지 아닌가? 쉬지 않고 앞만 보고 빠른 속도로 달리기만 하다 보면 몸에 무리가 가면서 결국은 드러눕게 된다. 그러다 때때로 사고도 터진다. 또 빠른 속도가 무조건 좋지만도 않은 게 빠르게 달리다보면 목적지에 빨리 도착할 순 있겠지만 주변 풍경은 놓치기 십상이다.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질주하다보면 주변 사람들로부터는 인심을 잃게 되는 경우가 잦은 것과 비슷한 이치다. 르망24는 날씨와도 싸워야 한다. 무려 24시간을 계속 달리다보니 날씨변화가 잦은데 레이스 도중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는 경우는 허다하다. 또 가로등도 없어 비가 쏟아지는 야간레이스는 거의 죽음이다. 이제 감이 좀 잡히시는지? 그렇다. 르망24는 그냥 ‘인생’이다.

한편 이렇다보니 르망24에 참가하는 드라이버들은 다들 ‘퍼펙트랩’을 마음속에 담고 있다. 랩(Lap)이라는 게 레이스에서 ‘트랙의 한 바퀴’를 의미하는 만큼 퍼펙트랩(Perfect Lap)은 ‘실수도 없고 모든 기어 변속과 코너 공략이 완벽한 랩’을 의미한다.

그리고 영화 <포드 V 페라리>에서 르망24 첫 참가를 앞둔 켄 마일스(크리스찬 베일)는 아직 어린 아들 피터(노아 주프)에게 퍼펙트랩은 존재한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기계를 한계까지 밀어붙이면서 버텨주길 바라려면 한계가 어디인지 알고 있어야 해.”

실제로 그는 퍼펙트랩을 찾아낸 듯 첫 출전한 1966년 르망24에서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며 1위를 차지한다. <포드 V 페라리>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로 ‘켄 마일스’도 실존 인물이다.

영화의 전체적인 골격은 르망24 우승컵을 놓고 자동차 생산업체인 이탈리아 ‘페라리(Ferrari)’와 미국 ‘포드(Ford)’ 간의 맞대결로 펼쳐진다. 1960년대 매출 감소에 빠진 포드는 젊은 층을 공략하기 위해 당시 스포츠카 레이스에서 절대적 1위를 고수했던 페라리와의 인수 합병을 추진하게 된다.

하지만 대량생산을 통한 대량판매에만 혈안이 된 포드의 상업주의에 실망한 페라리가 거절하면서 실패하게 된다. 게다가 페라리 회장인 엔초 페라리로부터 모욕까지 당한 헨리 포드 2세는 르망 24 레이스에서 페라리를 꺾을 차를 만들 것을 지시하게 되고, 당시 미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르망 레이스의 우승자였던 자동차 디자이너 캐롤 셸비(맷 데이먼)를 고용한다.

또 셸비는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천재적인 드라이버인 켄 마일스를 영입해 레이스에 임하게 되고 둘이 협력해서 만든 GT40은 완벽한 차로 포드의 전설이 된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얼마 뒤 그는 신형 차를 테스트하다가 갑자기 자동차가 뒤집히고 폭발하면서 마흔 일곱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뜨게 된다.

그러니까 레이스에서는 퍼펙트랩을 찾았지만 인생에서는 찾지 못했던 것. 미국 상업주의에 대한 비판이 돋보이지만 <포드 V 페라리>는 조금 깊이 들여다보면 이처럼 비례 관계에 있는 ‘속도와 고장(사고)’ 간의 모순에 눈길이 가게 된다. 그건 사실 우리들 삶의 모순과 같은 거다. 인생이란 게 그렇지 않나. 좋은 건 오래 못 간다. 또 태양이 있어 생명을 유지하지만 태양이 존재하는 한 그림자가 생기는 건 피할 수 없다. 해서 “한계를 알아야 한다”는 마일스의 조언은 곧 ‘완벽한 인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시 완벽에 가깝다고 평가받았던 GT40도 1966년부터 1969년까지 르망 24에서 내리 4연패를 달성한 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19년 12월 4일 개봉. 러닝타임 152분.

취재1부 이상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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