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눈치 보지 않고 밥 먹는 세상
아이들이 눈치 보지 않고 밥 먹는 세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2.18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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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생활 속에서 ‘밥’이라는 단어는 다양한 상황에 쓰인다. 헤어지는 인사로 “나중에 밥 한번 먹자”라고 이야기하고, 고마울 때는 “나중에 내가 밥 한 끼 살게”라고 말한다. 또 “밥은 먹고 지내냐”라고 안부를 묻고, 아픈 지인에게는 “밥은 꼭 챙겨먹어”라고 마음을 전한다.

특히 “나중에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은 친구나 지인을 만나서 가장 자주 쓰는 인사다. 비슷한 말로 “언제 술 한 잔 하자” 등이 있지만 활용 빈도에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음주는 매일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만약 매일 한다고 해도 하루 세 번씩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 문학 속에도 밥이 등장한다. 대표적인 것은 현진건의 단편소설 ‘운수 좋은 날’에 등장하는 설렁탕이다. 인력거꾼 김첨지는 설렁탕이 먹고 싶다는 아내에게 모진 소리를 했지만 며칠째 밥을 굶은 아내가 마음이 쓰인다. 열흘간 허탕을 치다 80전을 벌 정도로 운수가 좋았던 어느 날, 뜨끈한 설렁탕을 사 들고 집에 들어간다. 하지만 설렁탕 한 그릇이 먹고 싶다고 사흘을 조르던 아내는 미동이 없다. 김첨지는 속절없이 움직이지 않는 아내를 툭툭 친다. ‘왜 먹질 못하냐’며 원망한다. 이 소설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 그리고 먹인다는 것은 이야기를 끌어가고 인물의 감정변화를 표현하는 중요한 소재로 쓰였다.

우리가 이토록 남의 밥까지 챙기는 것은 궁핍했던 과거에 비춰보면 그것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밥을 먹었느냐고 챙기지 않아도 될 정도로 풍요로운 세상이 됐지만 그 안부를 물어보는 말에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여전히 남아있다.

이제는 우리가 말 그대로의 의미인 ‘밥을 먹었는지’를 챙겨야 하는 것은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아이들이다.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지원을 받아 끼니를 해결하는 아동은 전국적으로 33만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행정에서 지원을 하고 있지만 사각지대에서 밥을 굶는 저소득층 아동들은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5년 주기로 실시되는 보건복지부의 2018년 아동종합실태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하루에 세 끼를 먹지 못한다고 응답한 0~8세 수급가구 아동 비율은 7.2%, 9~17세 수급가구 아동 비율은 19.5%로 각각 나타났다. 모두 일반가구에 비해 3배가량 높은 수치다.

올해 동구의회 마지막 정례회에서 이 같은 상황에 놓인 아이들을 위한 2개의 조례안이 통과됐다. ‘울산광역시 동구 아동급식 지원 조례안’은 아동복지법 및 같은 법 시행령에 명시된 지원기준, 신청절차, 지원방법 등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울산광역시 동구 아동복지심의원회 구성 및 운영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은 아동급식 지원을 심의하는 기존의 동구 아동복지심의위원회 운영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마련했다. 이 조례안들은 지역사회 아동 모두가 밥을 굶지 않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기본적인 준비다.

올해 1천126명 등 동구지역 아이들이 상위법인 아동복지법 등에 따라 급식 지원을 받고 있다. 조례안이 마련된 만큼, 앞으로 동구청은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을 추가로 발굴하는 등 보다 적극적이고 세심한 행정을 펼쳐야 한다.

특히 아동급식카드의 문제점 개선이 시급하다. 식당 같은 곳에서 급식에 준하는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도입됐지만 한 끼에 4천~5천 원으로 책정된 비용으로는 제대로 된 밥을 먹기가 쉽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용처가 대부분 편의점에 그쳐 지원을 받고도 아이들이 영향 불균형을 겪는 경우가 많다. 아동급식카드 사용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느끼는 수치심을 없애 줄 방안도 찾아야 한다.

누군가에게 한 번쯤은 건너뛰어도 괜찮은 식사가 결식아동에게는 허기졌던 배를 채우는 단 한 번의 소중한 식사가 된다. 아이들이 눈치 보지 않고, 위축되지 않고 밥을 먹기 위해서는 행정기관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노력이 필요하다. 밥은 먹었는지 지인에게 건네는 인사처럼 결식아동들의 밥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길 기대한다.

유봉선 울산 동구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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