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가맨’을 찾아서
‘슈가맨’을 찾아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2.17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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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휴일에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슈가맨’이란 프로를 잠시 시청했다. 한때를 풍미했으나 지금은 잊혀진 가수를 기억 속에서 소환해 내는 그런 프로였다. 제법 참신한 기획과 포맷을 가진 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로 다큐멘터리, 시사, 스포츠 위주로 시청하는지라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이런 류의 예능 프로는 나름 다큐멘터리 성격도 가미하고 있어 신선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제목이 “왜 뜬금없이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이지?”라는 궁금증이 일었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자료를 찾아봤다.

‘식스토 디아즈 로드리게즈’(Sixto Diaz Rodriguez,1942년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생)라는 미국 가수가 있었다. 그의 부모는 멕시코 출신으로 미국으로 이민 온 후 디트로이트에서 노동자로 일하면서 가정을 꾸렸는데, 그가 여섯째아들이어서 Sixto(식스토)라는 이름을 얻은 것이다. 식스토 로드리게스는 1967년 “Rod Riguez”라는 이름으로 ‘I’ll Slip Away’라는 싱글을 발매한 후 “Rodriguez”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1970년에 ‘Cold Fact’와 1971년에 ‘Coming from Reality’ 등 두 장의 앨범을 발매하게 된다. 그의 음악 성향은 당시 멕시코 이민자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절대빈곤의 소외계층이 매일 직면하는 불의를 지적하고 현실의 고통을 호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음악의 내용이나 수준이 상당히 높았음에도 미국에서는 거의 판매가 되지 못했으며, 이로 인해 세 번째 앨범을 녹음하는 도중에 그는 음악 경력을 접게 된다.

이후 로드리게스는 가수의 꿈을 접고 육체노동자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된다. 전하는 바로는 그는 건물철거와 같은 공사장의 인부로 일했으며, 그 와중에도 도시의 노동계층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정치적 활동도 벌였다. 그래서 그는 미시건 주지사와 하원의원에도 여러 번 출마했으나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 했다.

식스토 로드리게스의 음악은 모국인 미국에서는 완전히 실패했으나 호주, 뉴질랜드, 보츠와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및 짐바브웨 등지에서는 수십 년간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스테디셀러를 기록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이런 나라에서 로드리게스는 Bob Dylan과 Cat Stevens 등의 반열에서 비교되었으며, 호주의 한 음반사에서는 로드리게스의 여러 곡들을 편집해서 ‘At His Best’란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다.

로드리게스 본인도 모르는 이 앨범이 우연히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으로 흘러들어오면서 영화보다 더 극적인 스토리가 시작된다. 당시 남아공은 소수 백인정부에 의해 매우 철저한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가 시행되고 있었고, 이는 대다수의 흑인 원주민과 거의 모든 나라로부터 거센 저항과 비판을 받고 있었다. ‘At His Best’ 앨범 중 일부 곡이 남아공의 국제적 고립과 인종차별을 종식시키는 데 중요한 사회운동이었던 반 아파르트헤이트(anti-Apartheid)의 저항곡으로 사용되면서 그의 음악은 남아공 국민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나 식스토 로드리게스는 이러한 해외의 성공을 전혀 모른 채 육체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었다. 1991년에 이르러서야 식스토 로드리게스의 장녀가 우연히 남아공 국민들이 그에게 헌정한 웹사이트를 방문하면서 이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로드리게스는 남아공 국민에 의해 다시 가수로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 영화 같은 스토리는 남아공의 열혈 팬 두 명이 로드리게스에 관한 여러 소문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노력하는 내용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Searching for Sugar Man’ 이 연거푸 수상의 영예를 안으면서 방점을 찍게 된다. 이 영화가 2012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World Cinema 특별심사위원상과 Documentary 관객상을 받은 데 이어 2013년 2월에는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카데미 최우수 다큐멘터리 상을 받았던 것이다.

여기서 잠시 로드리게스의 대표곡이자 다큐멘터리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Sugar Man’의 가사 일부를 음미해보자. ‘나의 의문을 풀어줄 사람은 바로 슈가맨 당신이야/ 슈가맨, 난 이런 치사한 세상이 신물이 나/ 어서 와줘, 슈가맨 난 이 광경이 지긋지긋해/ 파란 동전을 줄 테니 형형색색의 내 꿈을 되돌려줘’

이글을 쓰는 중에도 최근 방영된 ‘슈가맨’ 프로에서 20여년 만에 찾아낸 50대 가수가 재조명을 받고 있다. 시대를 앞서간 천재가수였지만 당대에는 별로 인정을 못 받고 잊혀졌다가 지금은 미국에서 배달 일을 하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어서 더욱 화제가 되고 있는 듯하다. 누구든 로드리게스가 될 수 있고, 슈가맨이 될 수 있다. 올해도 이제 며칠 안 남았다. 이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모든 중년들이 새해에는 모두가 슈가맨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전재영 코렐테크놀로지(주) 대표이사·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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