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맛까지 고요히 스며드는 글”
“뒷맛까지 고요히 스며드는 글”
  • 김보은
  • 승인 2019.12.15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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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계옥 작가 자전적 에세이 ‘눈 속에 달이 잠길 때’ 발간
엄계옥 작가의 '눈 속에 달이 잠길 때' 표지.
엄계옥 작가의 '눈 속에 달이 잠길 때' 표지.

 

“아버지의 마지막 아홉 달은 생애를 역으로 되밟는 과정도 있었지만 내 미움과의 결별을 위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 실하던 몸을 고통으로 깡그리 채우면서까지 당신에 대한 나의 미움을 사랑의 최상위 단계라는 연민으로 바꾸어 놓고 계셨다.”

엄계옥 작가가 펴낸 자전적 에세이 ‘눈 속에 달이 잠길 때’ 중 ‘막잠’의 한 대목이다.

이 글에서 저자는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가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지켜보며 미움과 연민이 교차하는 자신의 무겁고 저린 마음을 풀어놓았다.

책에는 이같이 저자만의 고요하면서도 깊은 서정성이 담긴 작품 ‘막잠’을 비롯해 ‘바우어새의 구애’, ‘분홍주의보’, ‘매서원’, ‘비상’ 등이 4부에 걸쳐 전개된다.

저자는 작품 ‘매서원’에서 척박한 화분 속 모진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고 꽃을 피운 매화를 보고 “아리땁게도 피웠구나”라며 내면의 응어리를 드러낸다. 그러면서 딸의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들은 옛 동요에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눈물을 쏟은 이야기를 녹인다.

눈보라 속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지나 맑은 햇살과 봄, 적막, 새끼고양이들과 함께하는 풍경의 일원이 되기까지 매화와 같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신달자 시인은 “읽히는 글들의 뒷맛까지 고요히 읽는 이들의 가슴에 스며 흐른다. 헛된 영광의 미련에 손짓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는 이미 남은 감정들을 하나씩 보듬어 주며 글로 승화시켰기 때문”며 “모든 글 속에 세상을 바라보는 긍정의 힘이 있다”고 추천의 말을 썼다.

이어 작가의 말에서 엄 작가는 “글은 내면과 연결된 또 하나의 생명체다. 달이 뜨는 밤이나 안개 낀 새벽이 지극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조차 너무 아름다운 것은 쓸 수 없었다. 깊숙이 도려내고 나니 상처가 가렵다. 상처 아문 자리에 날개가 돋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엄계옥 작가는 2011년 유심으로 등단했고 저서로는 시집 ‘내가 잠깐 한눈 판 사이’, 장편동화 ‘시리우스에서 온 손님’ 등이 있다. 한국시인협회, 울산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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