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지조(共命之鳥)’
‘공명지조(共命之鳥)’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2.15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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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은근히 기다려지는 것이 있다. ‘교수신문’이 대학교수들의 의견을 간추려 정하는 ‘올해의 사자성어(四字成語)’가 그것. 그 사회의 1년 치 상황을 네 마디 글자로 가장 그럴싸하게 묘사한 고사성어(古事成語)라고도 할 수 있다. 교수신문의 설문조사는 2001년 시작됐으니 올해로 19년째다.

교수신문은 추천위원들이 미리 골라낸 사자성어 35개를 파일럿 테스트(pilot test)를 거쳐 10개로 줄인 다음 설문조사를 벌인다. 그러면 교수들은 10개 중 2개를 골라 추천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 엄선한 2019년의 사자성어는 <공명지조(共命之鳥)>였다. 설문조사는 11월 29일~12월 9일 사이 전국 대학교수 1천46명을 대상으로 됐고, 그 결과 33%(347명)가 ‘공명지조’를 점찍었다. 뜻풀이는 잠시 뒤로 미루고 다음순위 사자성어부터 훑어보자.

2위는 ‘무엇이 어목(魚目=물고기 눈)이고 무엇이 진주인지 분간하기 어렵다’는 ‘어목혼주’(魚目混珠)로 29%(300명)가 선택했다. ‘어느 것이 암까마귀이고 어느 것이 수까마귀인지’ 가짜와 진짜가 마구 뒤섞여 있는 상태를 비유한 고사성어인 셈이다. 이를 추천한 문성훈 서울여대 교수(현대철학과)는 “올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충격을 준 사건은 누가 뭐래도 조국 전 법무부장관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라며 “대통령이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했던 조국과 윤석열 검찰총장 중 하나 혹은 둘 다가 어목이거나 진주일 것”이라고 했다. “아직은 판단하기 어려워 올해는 무엇이 어목이고 진주인지 혼란스럽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유선 서울대 교수(기초교육원)와 전호근 경희대 교수(후마니타스 칼리지)가 사회개혁 염원을 담아 추천한 ‘반근착절’(盤根錯節)과 ‘지난이행’(知難而行)은 3위와 4위 자리를 차지했다. 이 교수는 “정부가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개혁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으나 성과는 미흡했다. 내년에는 그 뿌리 일부라도 제거하길 국민들은 바랄 것”이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성공을 기약하기 어렵더라도 개혁은 반드시 추진해야 할 과제”라며 “현 정부가 성공과 실패는 하늘에 맡기고 중단 없는 개혁을 추진해 달라”고 당부했다.

5위 자리에는 박삼수 울산대 교수(중문학과)가 추천한 ‘독행기시’(獨行其是)가 올랐다. 그는 이 말이 ‘다른 사람의 의견은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처신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는 ‘군자는 곧고 바르지만, 자신이 믿는 바를 무조건 고집하지는 않는다’는 『논어』 위영공(衛靈公)의 말을 인용하면서 “특히 사회지도층은 그 사고와 처사에 합리성과 융통성을 가미할 줄 알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다시, 1위를 차지한 ‘공명지조(共命之鳥)’로 돌아가자. 이 네 글자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이 말이 『아미타경』(阿彌陀經)을 비롯한 불교경전에 등장하기 때문이지 싶다. 풀이하면 ‘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로, 글자 그대로 ‘목숨을 함께 하는 새’, ‘죽어도 같이 죽는 새’다. 머리가 두 개인 상상 속 공명조(共命鳥)의 한쪽 머리가 죽으면 다른 머리도 같이 죽기 마련이라는 이 사자성어가 분열된 한국의 사회상을 가장 잘 반영했다고 교수들은 보았다. 어느 한쪽이 없어지면 혼자만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은 같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공동체’라는 것이다. ‘공명지조’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추천한 최재목 영남대 교수(철학과)의 말을 들어보자. 그는 “한국의 현재 상황은 마치 공명조를 바라보는 것만 같다”며 “서로를 이기려 하고 자기만 살려고 하지만 어느 한쪽이 사라지면 죽게 되는 것을 모르는 한국 사회가 참 안타깝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자꾸만 “‘니 죽고 내 살자’라는 어리석은 생각이 공멸(共滅)의 지름길임을 왜 모르는가?”라는 나무람으로 들리는 것 같아서 뒷맛이 씁쓸하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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