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별곡
수능별곡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2.10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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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가는 우리 세대에 학교는 재미있는 곳이었다. 넓은 교정에서 친구들과 공도 차며 밤늦게까지 뛰놀던 곳이었다. 밤이 깊어지면 오싹한 공포가 찾아오곤 했다. 누구나 한 가지씩 있었을 학교에 대한 공포는 ‘공동묘지 위에 지어졌다더라’ ‘누가 목메어 죽었다더라’는 오싹한 이야기가 주는 무서움이었다. 학교가 ‘납량특집’의 단골 소재로 등장했던 것이다.

그랬던 학교가 이제는 또 다른 차원의 공포로 다가왔다. 학업에 대한 중압감이나 ‘왕따문화’로 인한 소외감이 키워낸 새로운 공포였다. 이러한 공포는 학교문화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첫 대학수능 문제풀이 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첫 수능은 1994학년도 대입 때 도입됐다. 울산의 한 신문사에 재직하던 무렵, 수능풀이를 호기심에서 해 봤다. 대입 문제를 신문에서 풀어주던 시절이었다. 첫 시험은 만점이 200점이었고, 8월과 11월 두 차례 치렀던 것으로 기억된다.

대입학력고사를 봤던 우리 세대에 수능은 몹시 생경했다. ‘오지선다형’에 맞춰 암기 위주로 공부했던 지난 세대의 시험 관행에 새로운 유형의 시험이 선보인 것이다. 지금은 가물가물하지만, 과학탐구에서 온도를 계산하는 문제는 기존의 공식만 대입한다고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이 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지식과 과학적 지식을 동시에 동원해야 했다. 단문단답형이 아니라 종합적 사고력을 평가하는 시험이었다. ‘종합적 지식’의 중요함은 바로 이때부터 느꼈다.

그러고 보니 수능을 치른 지 26년이 흘렀다. 수능 이전에는 본고사, 예비고사, 학력고사와 같은 다양한 시험방식을 거쳐야 했다. 수능은 그 다음에 자리를 잡았지만 그 사이에도 무수히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수능은 주입식, 암기식 교육에서 벗어나 말 그대로 대학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기준을 가리는 시험이다. 그래서 한 문제를 풀이하는 데도 그 학문에만 매몰돼선 안 된다. 수능의 원래 취지는 열 몇 과목과 씨름해야 했던 학생들의 학업부담을 덜어주자는, ‘배려 넘치는’ 제도였다.

그런데 난데없는 부작용이 생겼다. 사교육을 부추기게 된 것이다.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것들이 시험에 나오면서 수능이 어렵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사실 학교에서 못 배운 게 아니라 종합적인 사고력이 부족한 때문이었다. 그래서 학원 다니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학교교육도 수능에 맞춰져 한문, 예체능 같은 교과는 아예 뒷전으로 밀려났다. 오로지 수능을 위한 교육으로 변질하고 말았다. 점수에 맞춰 갈 수 있는 대학은 한정되고 진학할 학생은 많다 보니 학교친구가 경쟁자로 바뀌었다. 경쟁은 학교 안에 여러 가지 문제점을 만들어냈고, 학생을 죽음으로 내모는 일도 있었다.

그나마 숨통을 틔워준 것은 대학입시의 다양화였다. 이 눈치 저 눈치 보느라 입시철이면 가자미눈이 됐을지도 모를 학생들에게 ‘수시’라는 숨통이 새로 트인 것이다. 수시의 요체는 학생들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라는 것이었다. 한 가지만 잘해도 대학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고, 진보 성향의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자율권 보장을 위해 애썼다. 이러한 노력들이 지금의 교육계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이 변화의 바람이 몇몇 몰지각한 사회지도층에 의한 ‘부모찬스’에 막히려 하고 있다. 정부는 ‘부모찬스’를 제재하기 위해 다시 정시모집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물론 수시모집도 병행한다지만 수능의 비중을 높이면 ‘한 가지를 잘하는’ 학생들의 앞길을 막을지도 모른다. 이 학생들이 교육의 미래다. 학교가 다시 공포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남은 시간 지혜를 모아야할 것이다.

정인준 취재2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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