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향연’
‘신들의 향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2.08 22: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명의 향토연구가가 국보 제147호 천천리각석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아 적지 않은 파문이 예고된다. 그 주인공은 최종학력이 ‘울산농고’(울산공고 전신, 24회) 졸업인 김건곤(74) 남구향토사연구소 연구위원.

그는 최근 뱃심 두둑하게 <서석곡(書石谷) 회화문자도-신들의 향연>이란 저서를 자비로 펴내고 기념회를 앞두고 있다. 그는 모시는 글에서 “국보 제147호 울주 천천리각석 바위그림 문양을 그림문자로 보고 <신들의 향연>이란 책에 담았다”고 했다. 출판기념회는 18일(수) 낮 12시, 펠리체컨벤션웨딩 6층(남구청 맞은편)에서 열릴 예정. 3년 전(2016년)에는 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에서 펴낸 <울산남구향토사연구 제9집>에 ‘울주 천전리각석의 법흥왕 명문(銘文) 고찰’이란 글을 처음 올리기도 했다.

그의 주장 가운데 하나는 천천리각석의 그림문자들이 법흥왕(法興王) 대에 새겨졌고 다녀간 왕족이 ‘갈문왕’이 아닌 ‘법흥왕’이라는 것. 선행연구자 다수는 천천리각석을 “신라 법흥왕의 동생 갈문왕이 놀러와 새긴 세선화와 청동기시대(추정)의 추상적 그림‘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김 위원의 지론은 ‘갈문왕(葛文王)’(=신라 때 왕위에 못 오르고 죽은 왕족이나 왕의 근친귀족에게 추봉하던 왕명)이란 문자의 존재를 부인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선행연구자 다수가 판독을 잘못했다고 본다. 즉 ‘葛’자는 ‘首’자의 잘못된 풀이이고, ‘文’자는 ‘爻’ 자의 잘못된 풀이라는 것. 그는 자신이 해독한 ‘首爻’를 ‘점술에 능한 제사장’으로 이해하고 ‘侊夫知首爻’란 문장을 ‘제사장이 성찬을 차려놓고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지냈다’로 해석한다.

그는 그 근거를 이렇게 설명한다. “신라시조 박혁거세 거서간부터 56대 경순왕까지의 재위 기간 중에 을사(乙巳)년에서 기미(己未)년까지를 포함하여 15년 이상 재위한 왕은 박혁거세 거서간과 아달라 이사금과 법흥왕까지 모두 세 명뿐이다.” 참고로, 천전리각석에는 을사(乙巳), 기미(己未)란 시기를 나타내는 문자가 동시에 나온다. 선행연구자들은 바위그림을 새겨진 시기에 따라 ‘을사명(乙巳銘)’, ‘기미명(己未銘)’ 두 가지로 구분한다. 김 위원은 법흥왕이 서석곡을 처음 다녀간 시기를 서기 525년, 나중에 다녀간 시기를 14년 후인 539년으로 추정한다.

이색적인 주장이 또 한 가지 더 있다. 바위그림에 새겨진 ‘天魚(천어)’란 글자가 반구대암각화에 그득하게 새겨진 ‘고래’를 뜻한다는 것. 이 가설을 바탕으로 그는 몹시 황당하게 들릴 수 있는 주장도 과감하게 펼친다. “법흥왕은 서기 539년에 새긴 기미명 9행에 ‘온갖 문양의 형상을 보고 율령을 선포하여 백성들에게 그 명을 따르도록 하였다(=文彩品丁象 牟知奈麻其命人)’라고 한 것은 그때부터 나라에서 왕명(王命)으로 두 암각화를 보호하여 왔다는 증거이다.” 여기서 ‘두 암각화’란 천전리각석과 국보 285호 반구대암각화를 말한다.

하긴 천전리각석에는 ‘別等次天魚?喙 次?至人知?炅? 夫人吟其作之’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그는 이 글을 “별별 희한한 크고 작은 천어(고래)들이 울뭉줄뭉 무리지어 주둥이를 내밀고 차례대로 물방울을 내뿜으며 사람을 알아보는 것 같아서 사람들이 탄식하며 구슬처럼 깨끗이 닦아놓았다.”로 풀이한다.

그는 빠져나갈 구멍도 미리 뚫어놓았다. “비전문가인 필자의 부족한 식견에 대한 독자들의 질책은 이 책에 대한 애정으로 받아들이겠다.”라는 뒷말이 그것. 저서가 빛을 보기까지 난관도 많았으나 전문가 몇 분의 도움이 이를 거뜬히 눌러 덮었다고 했다. 이하우 울산대 교수(반구대암각화유적보존연구소)와 부산대 대학원 박사과정(한문학 전공)을 수료한 엄형섭 씨가 그들이다.

김정주논설실장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