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에게 삶의 용기 심어준 박주영 판사
피고에게 삶의 용기 심어준 박주영 판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2.08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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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냄새 물씬한 판결과 선행으로 세밑 한파를 녹여준 50대 법관의 미담이 요 며칠 사이 계속 화제의 중심에 머물고 있다. 지난 주말, 전국의 방송과 SNS를 뜨겁게 달군 화제의 주인공은 울산지법 박주영 부장판사(51)다. 그는 석 달 전 SNS로 울산서 만나 목숨을 끊으려다 미수에 그친 두 피고인에게 최근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이들을 위로·격려하고 책과 여비까지 건네 훈훈한 뒷얘기를 남겼다.

박주영 판사를 새삼 눈여겨보게 되는 이유가 있다. 성균관대를 나온 ‘변호사 출신 판사’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본받을 만한 그의 언행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 사실 그의 법조경력은 남다른 데가 있다. 1999년 사법연수원 28기를 수료하고 7년간 변호사로 활동하다 2006년 1월부터 법복으로 갈아입었다. 경력변호사 중에서 법관을 뽑는 ‘법조 일원화’ 첫해에 임용돼 ‘공채 1기’로 불리게 된 것이다.

박 판사는 기억에 남을 판결문으로도 유명하다. 2014년 11월 28일자 판결문의 끝부분을 잠시 들여다보자. “피고인들에게 법에서 정한 가장 무거운 벌금을 부과하는 이유는, 이 우주상에 사람의 생명보다 더 귀중한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환기하고자 함에 있다.” 이를 두고 ‘Ice Gag 게시판’에는 “저런 판사님이 한국에 계시다니 놀랍고 멋지다”는 댓글이 올라왔다. 8일에는 “핸드폰을 하다가 판사님의 말을 보았다”는 한 네티즌이 ‘제일 마음에 드는 구절’이라며 박 판사의 판결문 일부를 인터넷에 올렸다. “보르헤스라는 유명한 작가는 우주를 도서관에 비유했다. 우주가 도서관이라면 우주를 구성하는 우리는 모두 한 권의 책이다. 한 번 시작된 이야기는 허망하게 도중에 끝나서는 안 된다.”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박 판사는 ‘사려 깊고, 책을 가까이하고, 마음이 따뜻한 법관’이란 느낌이 든다. 이런 뒷말도 그는 남겼다. “한 사람이 생을 스스로 마감하기로 한 데는 절박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사연을 들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고립감 때문일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동료들의 이야기를 우리가 듣게 됐다. 우리 사회가 여러분들과 같은 사람들을 돕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 달라.”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결과를 막을 수만 있다면, 강제로라도 피고인들을 장기간 구금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깊이 고민했다. 하지만 재판과정을 통해 피고인들이 삶의 의지를 되찾았다는 긍정적 징후를 엿볼 수 있어서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박주영 부장판사가 두 피고인에게 삶의 용기를 심어줄 책을 1권씩 선물하고 그중 한 피고인에게 20만 원까지 쥐어준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아니다. 하지만 밖으로 알려지지만 않았을 뿐 박 판사처럼 지혜롭고 마음 따뜻한 법관은 울산지법에만 해도 얼마든지 더 있을 것이다. 2019년의 세밑은 그래서 더 아름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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