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델라인:멈춰진 시간 - 흰 머리카락, 꽃처럼 피다
아델라인:멈춰진 시간 - 흰 머리카락, 꽃처럼 피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2.05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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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라인:멈춰진 시간
'아델라인:멈춰진 시간' 영화 한 장면.

<아델라인:멈춰진 시간>에서 델라(블레이크 라이블리)는 1908년생이다. 2015년 현재 그녀는 107세의 장수 노인이어야겠지만 외모는 29세 때 그대로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겠냐고 하겠지만 뭐 영화니까.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델라는 29살 때 눈이 오던 날 교통사고로 물에 빠져 죽어가던 중 번개를 맞고 되살아난 뒤 시간이 그대로 멈춰버렸다. 다시 말해 나이를 먹어도 전혀 늙지 않게 되어 버렸다.

으레 축복이라 여길 테지만 이제부터 영화는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주변 사람들이 늙어갈 때 젊음을 그대로 간직한 델라는 정부기관으로부터 연구대상이 되어 자칫 잡혀갈 위험에 처하게 되고, 그 때문에 그녀는 주기적으로 신분을 바꿔 도피 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하지만 100년 가까이 29살로 살아가게 된 그녀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자신이 사랑했던 것들과의 ‘이별’이었다. 벌써 몇 마리째 반려견을 떠나보냈던 델라는 최근에도 한 마리 떠나보냈고, 그 빈자리를 엘리스(미치엘 휘즈먼)라는 남자가 메우기 시작했다. 반려견처럼 이미 몇 명의 남자들을 떠나보냈던 델라에게 사랑은 더욱 힘든 고통이었던 탓에 처음에는 엘리스의 마음을 애써 뿌리쳤다.

하지만 사랑은 늘 스펀지에 순식간에 스며드는 잉크 같았고, 결국 그의 마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엘리스는 자신의 부모님에게 소개하기 위해 델라를 집으로 데려가게 되는데 이젠 백발노인이 된 엘리스의 아버지 윌리엄(해리슨 포드)은 델라를 한눈에 알아보게 된다. 소싯적 깊이 사랑했지만 영문도 모른 채 헤어졌던 바로 그녀였기 때문. 당황한 델라는 윌리엄이 사랑했던 사람은 자신의 엄마였다고 속이게 되지만 결국은 들통이 나버린다.

삶이든 사랑이든, 인간이라면 누구나 ‘영원’을 꿈꾼다. 하지만 영생이나 영원한 사랑이 부럽긴 하지만 아름답지는 않다고 영화 <아델라인:멈춰진 시간>은 궁극적으로 말하고 있다.

한 때 깊이 사랑했던 사람이 백발노인이 되어 눈앞에 나타나고, 아직도 젊고 탱탱한 자신은 지금 그의 아들과 사랑에 빠져버린 이 막장 시츄에이션이 나름 의미심장한 건 바로 그런 이유다.

물론 늙지 않는 델라는 시종일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그렇지 않았다.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주인공 파이(아르판 칸)는 “삶이란 건 무언가를 끊임없이 흘려보내는 것이고, 그래서 가장 가슴 아픈 건 작별인사를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작별인사를 해도 이별은 아픈 거다.

자신의 시간이 멈춰버림으로써 델라가 흘려보내야 했던 사랑했던 모든 것들은 결국 그녀에게 눈물이 되어 역류했고, 우리 인간들이 꿈꾸는 영원한 삶과 영원한 사랑이라는 게 사실은 얼마나 징그러운 건지 영화는 잘 보여준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 시종일관 반짝반짝 빛이 나는 델라의 외모는 처음에는 아름답지만 시간이 멈춰서기 전 첫 사랑과 낳았던 자신의 딸이 이젠 할머니가 되어 델라와 마주앉은 장면부터는 흉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델라의 풍성한 머리카락들 사이에 생긴 흰 머리카락 하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깨닫게 해주는데 그것은 마치 한 송이 꽃 같다.

마침내 깨닫게 된다. 아름다움의 실체란 꾸밈이 아닌 자연스러움에 있다는 걸. 꽃이 피고 지듯 사랑도 피고 지고, 아름다움 역시 피고 진다. 그게 자연스러운 거다.

어릴 적 즐겨봤던 만화영화 중에 <은하철도999>라는 작품이 있었다. 일본의 전설적인 만화가였던 ‘마츠모토 레이지’의 원작만화를 토대로 만들어진 작품인데 거기서 주인공 철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메텔과 함께 우주를 횡단하는 ‘은하철도999’를 타고 먼 안드로메다은하로 가서 기계인간이 되려고 한다.

하지만 마지막회에서 그는 메텔의 부모님으로부터 이 조언을 듣고는 기계인간이 되기를 포기한다. “인간의 삶이 아름다운 건 유한하기 때문이다.” 2015년 10월15일 개봉. 러닝타임 112분.

취재1부 이상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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