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준의 인생한담] 세계의 풍물이 한 자리에
[박재준의 인생한담] 세계의 풍물이 한 자리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2.04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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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 이야기는 30여 년 전 한국전력 월성원자력건설소에 근무하던 때로 거슬러 오른다.

그때만 해도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했고 민간인은 외국환을 소지하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필자는 운 좋게도 기술 연수차 캐나다에 갈 기회가 3차례나 있었다. 월성 1호기는 가동한 지 15년쯤 지났고 후속 3기(2,3,4호기) 건설이 시작되던 무렵이어서 기술연수가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필자에게 연수생 16명을 인솔하는 책임이 주어졌다. 나는 어느 정도 이력이라도 있었지만 다른 연수생들은 생애 첫 해외 나들이여서인지 설레면서도 걱정스런 표정들이었다. 현지에 도착한 뒤 엔지니어링 본사 부근에 개별숙소를 정하고, 차량을 구입하고, 사무실을 배정받는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은 현지 교육안내원의 친절한 도움 덕분이었다.

필자는 혼자만 멀리 떨어진 전철역 종점 키플링 지역의 반지하방을 거처로 정했다. 우선 출석할 교회부터 물색했다. 어느 교파 소속 교회인지 고민해야 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이곳은 그렇게 요란스럽지 않아 안착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하루는 예배를 마치고 길거리 벼룩시장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크기가 작은 황동 주전자 하나를 보는 순간 호기심 반 설렘 반으로 지갑을 뒤졌다. 아마 당시 가격으로 50센트 정도였던 것 같다.

이것이 껌 딱지 같은 나의 애장품 제1호가 될 줄을 그때는 몰랐다. 숙소로 돌아와서 비눗물로 안팎을 깨끗이 닦고 요모조모 찬찬히 뜯어보니 인도산이었다. ‘어떻게 이런 소품을 정교하게 만들 수 있었을까?’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 뒤부터 골동품에 대한 애정이 스멀스멀 싹트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기분은 ‘황홀’ 그 자체였다.

그때부터 주말이면 으레 장소를 안 따지고 골동품가게를 찾아 헤매는 습관이 생겼다. 한갓 조그마한 물건 하나가 캐나다 체류기간 1년 내내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해주다니. 이만한 행복이 어디에 더 있겠나.

북미 지역은 여러 나라 이민자들을 받아들인 다문화 국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각국의 물건들이 이삿짐 속에 딸려와 결국은 골동품가게로 흘러들어간 게 아닐까? 아무리 작은 도시라도 반드시 골동품가게는 있었고, 빈손으로 돌아오는 일도 없었다.

그렇게 구입한 골동품은 항상 운전석 대시보드 위에다 보란 듯이 올려놓곤 했다. 감상하는 순간은 콧노래가 절로 나왔고, 피로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런 재미에 때로는 미국의 심장부인 해리스버그의 골동품종합전시장에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자꾸만 불어나는 골동품 숫자에 신바람이 다 났다. 세계의 풍물을 좁은 방안에 쫙 깔아놓고 뒹굴면서 감상하는 재미를 맛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다음은 귀국할 때 부산세관에서 일어났던 일화다. 당시만 해도 값비싼 외국 가전제품이 인기였던 터라 우리 연수생 대부분은 덩치가 엄청나게 큰 냉장고나 텔레비전을 장만해서 가져왔다. 물론 관세도 많이 물어야 했다.

하지만 필자만은 조그만 종이박스가 전부였다. 풀어 헤쳐 들여다본 세관원의 말이 걸작이었다. “무슨 이런 잡동사니를 다 가져왔소, 얼른 챙겨 가시오.” 속으로 혼잣말을 하며 웃었다. “이 양반아! 돈으로 따지면 가전제품과는 비교도 안 되는 귀중품이야, 큭, 큭…”

짐을 풀어서 세 보니 자그마치 250점은 넘었다. 숫자는 더디지만 계속 늘어나더니 지금은 약 300점쯤 진열장에 모셔져 있다.

골동품 수집에도 원칙이 있다. 잘 깨지는 유리나 도자기류는 관심 밖이고 금속류만 고집한다. 종, 재떨이, 다리미, 화분, 향로, 각종 동물, 저울추, 성모상 등등 일일이 이름을 대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세계에서 제일 작은 술병과 술잔 세트이지 싶다.

처음에는 시큰둥하던 아내도 주위 아주머니들의 칭찬과 감탄에 물들었는지 가끔은 먼지도 닦아주어 안심이다. 적어도 쓰레기통에 버리는 일은 없을 테니까…. 때로는 나의 수집벽을 잘 아는 지인들이 여행 중에 골라 온 소품들을 선물이라고 가져오니, 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박재준 에이원공업사 사장·NCN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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