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나는 여행
혼자 떠나는 여행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2.03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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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떠나는 여행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얼마 전 클룩에서 조사한 여행에 관한 리서치가 눈길을 끌었다. 혼행에 대한 여러 조사였는데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답에서 세계 여러 나라의 평균 수치를 훌쩍 뛰어넘으며 단연 한국이 1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여행을 다니다보면 배낭을 메고 이곳저곳 사진을 찍으며 여유롭게 혼자 걷는 한국 사람을 만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무도 찾지 않을 것만 같은 300년 된 낡은 타이중의 시골마을 버스정류소에서 만난 그녀도 한국 여성이었고, 검색해서 들어간 낯선 도시의 맛집 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느긋하게 식사를 즐기던 그도 한국 사람이었다. 여행을 가기 전 관련 카페에 정보를 검색하다보면 혼자 밥 먹을 수 있는 곳이 어디인가, 혼자 머무르기에 안전한가 하는 질문들이 많은 것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자기에 대한 보상, 새로운 곳에 대한 호기심, 지친 일상의 치유라는 흔한 여행의 동기보다 ‘혼자’ 어디든 떠난다는 것에 나는 많은 점수를 주고 싶다. 멀고 긴 여행도 그렇지만 일상에서의 산책조차도 혼자의 시간을 만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얼마간의 짬을 내어 혼자 걷는 시간은 삶에서 누구나 필요하다고 얼마 전 지인에게 말했다가, 심심하잖아요, 아니 왜 혼자 걸어요, 라는 답이 돌아와 되레 잔소리장이가 된 적이 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혼자 가는 여행의 준비가 어떤 때엔 귀찮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준비하는 꽤 오랜 시간을 떨림과 기대감으로 보낸다. 항공권을 예약하고, 여행 동선에 맞춰 잠잘 곳을 정한다. 도시에서는 야경을 볼 수 있게 넓은 통유리창 있는 숙소를, 해변이라면 일출은 볼 수 있는지, 노을은 어디로 지는지, 잠잘 곳만 정해지면 나머지는 유동적인 일정으로 마음 닿는 길을 걷기만 하면 된다.

혼행에서 가장 아쉬운 점의 설문에는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과 안전을 꼽았다. 아무리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전혀 외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아주 멋진 노을을 만나는 순간, 먹어보지 못한 낯선 음식이 무척이나 달콤할 때, 창밖에서 스며드는 꽃향기가 침대 위를 흐르는 시간, 누군가가 옆에 없다면…. 그것이 외로움이라면, 그 외로움은 그리움을 자라게 한다. 그리움이 자라면 사랑은 다시 시작된다.

낡은 배갯내음 같은 사람들을 하나둘씩 떠올리며 낯선 도시의 밤을 건넌다. 익숙한 것에서 멀어지려고 하는 몸만큼 다정하게 되짚어 다시 돌아가는 마음은 관성처럼 당겨져 제자리를 지키게 한다. 돌아오지 않는 여행은 없다.

수십 년 해왔던 일들을 접고 새 꿈을 꾸며 제 2의 인생의 출발점에 서 있는 그녀와 이번에 가까운 대만 여행을 함께 했다. 직장 연수나 가족들과의 패키지 여행을 몇 차례 했던 그녀는 혼행을 한 번도 다녀본 적이 없어서 조금은 두렵다고 했다. 어쩌면 인생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새로운 길을 걷는 그녀와 동행하며 응원해주고 싶었다. 예약을 도와주고 함께하는 여정 동안 예기치 못한 어려움을 옆에서 지켜보았지만, 다음에 혼자일 그녀를 생각해 제법 혹독하게 모른 채했다.

구글 맵을 켜고 밤늦도록 야시장을 돌아다니고, 낮에는 도시를 가로지르며 함께 걸어 다녔다. 며칠을 머물렀던 낯선 곳, 뜻 모를 간판들 아래 이방인으로 걷는 그녀의 뒷모습이 한결 자유롭고 편안해 보인다. 이제 혼자 여행 다닐 수 있겠는지, 물었다. 아직 조금은 두렵지만 도전해 볼만큼 흥미로웠고, 그런 열정을 가질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을 테니 용기를 내 보겠다며 슬며시 웃었다.

여정에서 익숙해져 마음이 여유로웠던 날 함께 자전거를 빌려 탔다. 세계에서 자전거 길로 유명하다는 달과 해를 담은 일월담, 낯선 곳에서 자전거를 타는 일은 늘 옳다. 공기와 햇살, 윤슬진 강물과 함께 바퀴를 굴리는 시간은 의심 없는 안온함이다. 비가역성의 시간이지만 동그랗게 맞물려 돌아가는 자전거 바퀴처럼 처음과 끝이 돌고 도는 세상, 페달을 밟고서 일으키는 바람도 그저 동그랗게 세상 속으로 퍼져나간다.

삶의 여정이라는 말과, 혼자 하는 여행은 참 닮았다. 이제 외롭고 조금은 두려울 혼자의 여정을 준비하는 그녀가 동그랗고 부드러웠던 자전거 바람을 기억하면 좋겠다.

최영실 여행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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