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국악인 등용문 되게 전국 예술제로 키울 생각”
“무용·국악인 등용문 되게 전국 예술제로 키울 생각”
  • 김정주
  • 승인 2019.12.03 22: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화앵 예술제’ 판 키운 김언배 울산대 교수(섬유디자인학과)
김언배 교수.
김언배 교수.

 

맥 끊길 뻔한 행사, 되살리기로 결심

하마터면 호흡이 끊길 뻔했던 지역행사를 예술적 심폐소생술로 되살려놓은 학자 겸 작가가 있다. 울산대에서 30년째 섬유디자인학을 가르치고 있는 김언배(金彦培, 62) 교수가 그 주인공. ‘되살아난 지역행사’란 올해로 18회째를 맞이한 ‘전화앵(?花鶯) 예술제’를 가리킨다.

울산무용협회의 진혼제로 첫선을 보였다가 2회부터 울산학춤보존회가 도맡아 질긴 연을 이어온 ‘전화앵 예술제’. 이 색깔 있는 지역행사는 그러나 지난해 17회 행사를 마지막으로 소멸 위기를 맞는 듯했다. 자치단체의 장이 바뀌면서 후원단체(울주문화원)의 지원이 끊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이때부터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울산학춤 전수관에서 열린 17회 예술제를 가까이서 지켜본 김 교수의 뇌리에 ‘새로운 변화’의 밑그림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전화앵 예술제의 산 증인 김성수 선생(‘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민속학 박사과정 수료)이 갑자기 단기필마(單騎匹馬)로 보입디다. 그래서 얼마 전 ‘순천만 학춤축제’ 보러가는 길에 결심했죠. 우선 살려놓고 판도 키우기로 말입니다.”

짧더라도 ‘전화앵’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최초의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에 나오는 19자(悅朴嶺在府南三十里 東都技?花鶯所埋之地=열박령은 경주부 남쪽 30리에 있는데 동도기 전화앵이 묻힌 곳이다)가 전부로, 전화앵은 나말여초(羅末麗初=신라 말~고려 초)의 이름난 예기(藝妓)의 예명(藝名)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 후기의 시인 김극기의 한시에도 등장했고, 근자에는 사학자 이현희(작고)와 작가 이양훈의 저서나 소설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추구하는 작품 주제어는 ‘자유의 혼’

김언배 교수가 ‘전화앵’에 시선을 돌렸다고 해서 고개 갸웃거리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알고 보면 그의 예술혼은 ‘샤머니즘’에 맞닿아 있다. 그렇다고 전화앵이 무녀(巫女)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김 교수가 요즘 몰입하고 있는 작품세계의 주제어는 「자유의 혼」이다. ‘울산대 조형논총 제2권 3호’에서 그는 「자유의 혼」을 배태시킨 한국의 시대상황을 ‘군사정권 통치하의 억압구조’로, 시대의 정신적 요구를 ‘자유의 이데올로기’로 보았다. ‘한국의 전통적 색채의미구조’를 논하는 자리에서는 ‘오방(五方, Five Direction)’을 떠올리기도 했다. 이 점에서는 오방색(五方色)에 심취해 있는 그의 절친 이노형 전 울산대 교수(국어국문학, 현 울산고래문화재단 상임이사)와 ‘죽이 잘 맞는다.’

최근에는 저녁나절에 가라앉았다고 아침나절에 공중으로 비상하는 풍선형 설치미술작품을 곧잘 등장시킨다. 이들 작품의 주제 역시 「자유의 혼」과 궤를 같이한다. 작가의 변을 잠시 들어보자. “‘지상에서 영원으로’ 향하고자 하는 인간의 자연회귀 욕망을 드러낸 겁니다.” 어쩌면 그가 말하는 ‘자유의 혼’은 ‘역마살(驛馬煞)’의 또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1987년 이후 지금까지 연 개인전만 무려 30회나 된다. 1년에 거의 한 번꼴로 전시회를 마련한 셈이다. 가장 최근에 마련한 개인전 ‘하얀 러시아’의 무대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미술관’이었다.

지난달 30일 울주군 KCC일반산업단지 근처 전화앵 시비(詩碑) 앞에서 고려 후기 문인 김극기의 시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왼쪽 세번째)와 김언배 교수(오른쪽 세번째).
지난달 30일 울주군 KCC일반산업단지 근처 전화앵 시비(詩碑) 앞에서 고려 후기 문인 김극기의 시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왼쪽 세번째)와 김언배 교수(오른쪽 세번째).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사실 그의 기획력과 임기응변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30여 년에 걸쳐 쌓은 노하우와 그칠 줄 모르는 태생적 추진력이 그의 오늘을 존재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의 열화 같은 성정은 ‘제18회 전화앵 예술제’ 프로그램에서도 그대로 묻어난다.

우선, 춤꾼 김외섭(김외섭무용단 단장)에게 ‘제18대 전화앵’의 의상을 걸치게 했다. 출연진 교섭에서 포스터 제작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끝, 그의 숨결이 안 가 닿은 데가 없다. 통도사 방장 성파 큰스님한테서는 전화앵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歌扇舞衫(가선무삼)」이란 친필휘호를 직접 받아왔다. 담양 죽록원의 박인수 훈장의 붓글씨도 이미 받아두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단국대 남지향 교수, 부산대 김성계 교수의 작품도 거뜬히 받아낸 것을 보면 가히 ‘전국구’ 수준이다. “음악, 미술, 문학(시, 수필), 무용, 학술에 이르기까지 종합예술제 모양새를 갖추고 싶었죠.”

그러다 보니 저절로 판이 커졌다. 그러나 멈추는 일이 없다. 늦은 밤도 이른 새벽도 가리지 않는다. 그 열정에 놀란 진해의 지인이 단체대화방에 이런 글을 올렸다. “김 교수! 새벽부터 웬 난리이신가?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볼만하네.” 그도 장난기 있게 답글을 올렸다. “준비기간은 짧고 하던 일은 많다 보니 민폐가 큰 줄 압니다. 널리 용서 바랍니다.”

이번 행사를 기념하는 학생작품전은 지난달 25일부터 30일까지 울산대 ‘31갤러리’에서 이미 마쳤다. 국제교류전 ‘가선무삼’은 12월 2~7일 울산대 아산도서관 ‘갤러리 쉼’에서, ‘김언배 교수 초대전’은 12월 16~21일 울산대 아산도서관 ‘갤러리 쉼’에서 열린다. 그리고 주 무대는 12월 4일(수) 오후 3시부터 울산대 시청각교육관 다매체강당에서 3시간 동안 마련된다.

내친김에 ‘전화앵 예술제’의 판을 전국 규모로 키워 무용·국악인들의 등용문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포부도 이번 준비기간 동안 지니게 된 것도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물론 이 구상은 김성수 선생(울산학춤 창시자)의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김 교수의 꿈이기도 하다.

제18회 전화앵 예술제 포스터.
제18회 전화앵 예술제 포스터.

 

이노형-노성환 교수와는 ‘울문사’ 인연

유별나고, 붙임성 있고 유머감각 풍부한 그에게 ‘별명’이란 게 없을 수가 없다. 물론 젊을 때 주위에서 지어준 별명이지만 하나같이 배꼽을 쥐게 만든다. “얼굴 크다고 ‘큰 바위 얼굴’, 줄여서 ‘얼큰이’란 별명 일찍이 얻었답니다. 활동무대가 넓다 해서 ‘왕발이’, ‘항공모함’이란 별명도 갖고 있죠.”.

홍익대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1977년에 입학했으니 당연히 ‘77학번’이다. 하지만 학번 얘기가 나오면 다소 헷갈리는 일이 생긴다. 패션 전공인 부인 손영희 여사(63)의 학번이 두어 계단 높은 것이 그 첫째 이유다. 홍대 앞에 차렸던 작업실 ‘컴바인’에서 머리를 맞대다가 88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동료에서 부부 사이로 위상을 바꾸었다.

학번 하면 이노형 이사도 동시에 걸린다. “학번은 제가 이노형 교수보다 1기 빠르지만 해병대 장교로 치면 제가 1기 늦은 셈이죠.” 해병장교 기수는 김 교수가 66기, 이 이사가 65기라 했다. 그러다 보니 악의 없이 티격태격하는 습관이 몸에 붙었다.

‘노찾사’가 한창 인기를 끌던 90년대 초, ‘문화적 야만도시’에서 벗어나도록 하자며 ‘울문사’(=‘울산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를 만들어 상머슴 노릇을 같이 했던 이노형, 노성환 교수(울산대 일어일문학과)와는 아직도 유대가 끈끈하다.

종교는 가톨릭. 쌍팔(1988)년도에 받은 영세명은 교황과 똑같은 ‘프란치스코’. ‘프란치스코의 기도’를 유난히 애송하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부인 손 여사도 같은 종교의 신앙인. 복산성당을 거쳐 지금은 우정성당에서 봉사활동에 여념이 없다.

1990년 3월 2일에 울산대에 첫발을 내디뎠으니 울산 생활 30년차다. 중국 중앙미술학원 교환교수(2017), 미국 오레곤 포틀랜드 주립대학 교환교수(2000~2001) 경력을 쌓았다.

미술학 박사학위는 울산대 교수 재임 중 홍익대 대학원에서 취득했다(2009. 2).

글=김정주 논설실장·사진=최지원 기자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