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콘서트
어느 콘서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2.01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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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번개초대를 차마 거절할 수 없어 끌리다시피 들여다본 어느 시(詩)낭송 콘서트 마당. 밀양 산다는 여성손님 한 분이 마이크를 잡았다. “이렇게 아름답고 품위 있는 콘서트는 처음 봅니다.” 공치사 아닌가? 하지만 객석손님 모두는 뜨거운 박수로 공감을 표시했다.

11월의 마지막 날 이른 저녁시간, 태화로터리 옆 C호텔 뷔페레스토랑 3층. “함께여서 고맙습니다”란 콘서트에서는 나이, 성별을 안 가린 24명의 낭송가가 무대를 오르내렸다. 70대 초반 여류에서 7살 초등학교 남자어린이까지. ‘2019년 경담문화 송년 디너콘서트’는 그렇게 속살을 선보였다. 진행은 경담(慶談) 박순희 ‘시낭송 아카데미’ 원장(‘한국스피치연구회’ 초대회장)과 김지나 총괄국장이 나누어 맡았다.

출연자들이 저마다 ‘은장도’처럼 품고 있는 것이 있었다. 다름 아닌 ‘프로의식’. 의상이나 소도구, 표정연기, 배경음악, 무대영상 어느 하나 흐트러짐이 없게 도운 비장의 무기였다.

시인 정일근은 맞춤시 ‘어느 낭송가의 노래를 위한 에스키스’를 바쳤다. 한 여류 낭송가는 가수 안치환의 노래로 더 유명해진 정호승 시인의 다음 시를 무대에 올렸다.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탈탈 털어/ 나는 몇 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하여 단 한번도/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날에도/ 돌연꽃 소리없이 피었다 지는 날에도/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

한 발 앞선 장면전환의 재능 때문이었을까? 1시간 20분에 걸친 릴레이낭송은 ‘지루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짜임새 있는 프로그램 순서가 특히 그랬다. ‘경담 영상-숙성-병아리-초대 시낭송-시노래-아름다운 관계-익어가는 중-객석 낭독-무르익다.’ 행사가 끝난 뒤 콘서트 총괄지휘자 박순희 원장에게 말씀을 청했다. 반응이 돌아왔다. “보셨겠지만, 저희들은 언제나 ‘최고’를 지향한답니다.” ‘프로정신’이 ‘최고지향정신’의 동의어란 얘기로 들렸다.

‘아름다운 관계’는 모자(母子) 2쌍의 릴레이 낭송을 의미했다. 아들 서상욱 학생에 앞서 무대에 오른 조민영 낭송가는 ‘사랑의 변주곡’이란 시로 1960년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시인 김수영(1926~1968)을 2019년 11월로 불러냈다. “…눈을 떴다 감는 기술 ? 불란서혁명의 기술/ 최근 우리들이 4·19에서 배운 기술/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소리 내어 외치지 않는다/…”

‘숙성, 병아리, 익어가는 중, 무르익다’의 말뜻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후진들의 숙련 정도를 가늠하는 표현이라는 것. “‘숙성’은 사오 년, ‘병아리’는 한두 달 배운 제자들을 말하는데 병아리들, 참 신선해 보이잖아요?” 현재 수강생은 30명, 회원은 50명 남짓. 하지만 거쳐 간 제자 수를 일일이 다 기억할 순 없다. 아카데미 역사가 자그마치 15년이니….

이날 객석에는 송병기 경제부시장도 섞여 있었다. 콘서트가 끝날 무렵 부시장이 잠시 부름을 받았다. 사회자의 말마따나 ‘계획에도 없던 일’이었다. 부시장은 인사말을 나태주 시인의 ‘들꽃’(꽃을 보듯 너를 본다)으로 대신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날 ‘콘서트의 격을 더해준 것’에는 울산의 시노래 가수 남미경의 가슴을 울리는 열연도 있었다. 기타 음률에 기댄 그녀의 시노래 두 편은 긴 여운으로 남았다. 행사가 끝날 무렵 누군가가 이런 뒷말을 남겼다. “누가 감히 울산을 ‘서정 부재(抒情不在), 문화 불모(文化不毛)의 도시’라고 낮추어 말할 것인가?” 콘서트가 떨구어준 소중한 ‘자긍심의 이삭’ 한 점, 그 이상의 보람으로 다가왔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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