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자아투쟁
역사는 자아투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1.26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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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의 이암 선생은 ‘나라는 인간의 몸과 같고, 역사는 혼과 같다’고 했고, 신채호는 그 역사를 ‘아(我, 나)와 비아(非我, 남)의 투쟁’이라고 했으며, 토인비는 ‘도전과 응전의 기록’이라고 정의했다는 말은 많이들 들었다. 반면, 고 이홍범 박사가 ‘역사는 자아투쟁’이라고 했다는 말은 좀 생소할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상당히 일리 있는 말이다.

나와 남의 투쟁이나 도전과 응전은 외형적으로 보이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전에 마음속에서 그것을 결심하여 선택하는 보이지 않는 과정이 있다. 보이지 않으니 간과하기 쉽지만, 미운 사람을 주먹으로 한 대 칠 것이냐, 물을 한 바가지 끼얹을 것이냐, 욕을 할 것이냐 아니면 조용히 타이를 것이냐 등을 마음속으로 결심한 후에 행동으로 나오는 것임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모습은 긴 기간 동안 수많은 결심과 선택을 통해 내가 실천한 내 행동의 결실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본능적인 것을 비롯하여 후천적으로 요구하는 욕망이란 것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서 이것이 사회 규범이나 도덕 등에 배치될 경우 결심을 할 때 심한 내부갈등을 겪게 될 것이다. 이것이 자아투쟁이고 여기서 이겨야 큰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 해법을 이홍범은 1992년 미국에서 펴낸 『홍익민주주의』라는 책에서 ‘1% 대 99%라는 현대 세계의 극단적 양극화 현상은 우주의 본성이 둘이 아닌 하나라는 것을 몰라서 생긴 현상이다. 그 해법은 홍익인간 이념뿐’이라고 주장했다. 바로 이 점이 자아투쟁에서 이길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라는 말이다.

요즈음도 많은 지식인들이 우리는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고 번영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생존은 경쟁’이라는 서구식 사고방식에서 나온 명제를 진리라고 배워 그렇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존경쟁이라는 것은 너를 나의 경쟁 대상이라고 생각하여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너와의 경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기본 인식에서 출발한다. 특히 요즘의 자유자본주의적 세계화 과정에서는 무한경쟁을 많이 강조한다.

무한경쟁이란 권투경기에서 체급별로 제한하여 같은 급의 선수들끼리 경기를 하게 하는 기본원칙을 없애고 헤비급과 플라이급 선수 간에 경기를 붙이는 것과 같은 의미다. 이 같은 무한경쟁은 그 결과가 뻔히 내다보인다. 그러니 그런 주장은 무한경쟁에서 이길 수밖에 없는 선진국이 주장하는 것이다.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더구나 우리나라나 후진국에서 ‘무한경쟁’을 해야 한다고 떠벌리는 것은 자신과 우리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길이 될 수 있다. 케임브리지대학의 장하준 박사가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책으로 선진국을 비판하여 뮈르달 상을 받았지만, 선진국은 자신들은 보호무역을 통해 선진국이 되고서도 후진국들이 그것을 배워 선진화하려고 하면 못하게 막는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처럼, 자신들은 보호무역을 하면서 겉으로 후진국은 보호무역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있으니, 정의가 제대로 살아남을 수가 없다. 이러한 무한경쟁을 하면 후진국들이 모두 패자가 되므로 승자는 1%, 패자는 99%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홍범은 바로 이러한 상황으로 가지 않도록 하려고 지적을 했다. 우주의 본성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인식은 나와 네가 생존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어우러져 하나가 되어 함께 잘 사는 길을 찾아야 하는 관계라는 것이고, 그런 사상이 홍익인간 사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화도 무한경쟁이 아니라, 장하준 박사의 말처럼, 선진국과 후진국이 ‘같이 가는’ 세계화를 지향해야 한다. 그러려면 나만의 이익보다 나와 네가 하나 된 ‘우리’의 이익을 위하여 내면으로 심각한 ‘자아투쟁’을 해야 한다. 자신의 욕망을 내려놓아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인간의 역사는 그런 자아투쟁으로 점철되어 있고, 한류는 바로 온 인류들에게 그러한 실천을 깨우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박정학 역사학박사·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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