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부문 ‘개도국 지위’ 상실에 대비한 대책
농업부문 ‘개도국 지위’ 상실에 대비한 대책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1.25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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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문제는 좀 더 잘 먹고 잘 사는 문제에 대한 고민이지만 식량안보는 죽고 사는 문제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문제에 속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주요국 곡물 자급률 현황에 따르면 미국, 프랑스, 스위스는 곡물 자급률이 100~190%나 될 정도로 자국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있는 반면 일본은 30%, 한국은 20% 초반으로 식량안보가 불안정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일찍이 매헌 윤봉길 의사는 ‘농민독본’에서 “우리 조선이 돌연히 상공업 나라로 변하여 하루아침에 농업이 그 자취를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이 변치 못할 생명창고의 열쇠는 의연히 지구상 어느 나라의 농민이 잡고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 농업이 처한 현실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가 OECD에 가입한 이후 WTO 안에서 더 이상 개발도상국(이하 ‘개도국’)으로 간주할 수 없다는 시각이 많아, 차기 협상에서 농업부문의 개도국 지위 유지에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최상의 방안은 개도국 지위를 계속 유지하도록 최선을 다하는 일이다. 우리나라가 OECD에 가입할 당시에도 농업부문은 ‘개도국’ 조건을 붙여 인정을 받았고, UN 식량농업기구(FAO)의 통계자료에서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개도국으로 분류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는 남북한이 군사적 대치상태에 있고, 북한 주민들이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감안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제관례상 특정국가의 개도국 지위 여부는 자기 선언적 차원에서 결정되어 왔다. 이 점을 감안해서라도 우리 농업이 처한 어려운 여건을 다른 나라에 적극 홍보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만약 농업의 개도국 지위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농산물의 관세를 5년에 걸쳐 최고 70%까지 낮추어야 한다. 주요 품목을 예로 들면, 쌀은 513%에서 154%로, 마늘은 360%에서 108%로, 고추는 270%에서 81%로, 양파는 135%에서 41%로 낮추어야 한다.

농업보조금도 1조4천900억 원에서 8천195억 원으로 줄여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농업협상이 완료될 때까지 2~10년 정도가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그때까지 과감하고 공격적인 대책을 마련하여 경쟁력을 높여나갈 필요가 있다.

그 다음, 공익형 직불제를 도입해서 확대하는 일이 절실하다. 2018년 강원대 연구 결과 우리나라 농업의 다원적 가치는 약 281조 원 정도다. 세분하면 △양분 공급 179조8천억원 △자연 순환 79조1천억원 △식량 생산 10조5천억원 △탄소 저장 6조5천억원 △수자원 함양 4조5천억원 등이다.

셋째, 중·장기 계획에 따라 농업분야 예산을 늘려 농업의 체질과 경쟁력을 강화하는 일에 진력해야 한다. 농업보조금은 OECD 평균이 13.7%, 미국 9.0%, 일본 8.1%, 스위스 50%인 반면 한국은 5.6%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1960년대 국제미작연구소(IRRI)를 세울 정도로 농업강국이었던 필리핀이 1990년대 농업투자액을 절반으로 줄이는 바람에 쌀 부족 국가로 전락하여 2008년에는 하루 세 끼도 못 먹는 인구가 1천만명이 넘을 정도가 되었다.

개도국 지위 상실이 필리핀과 같은 상황으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농업을 다원적 가치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특히 안보생명산업이 생사(生死)와 연결된 사업임을 명심하고 이에 따른 투자를 병행할 필요가 있다. 청주, 포항, 이천, 경북기계 등에서 미국, 캐나다, 중국, 호주 등지로 쌀을 공격적으로 수출하는 일도 지속되도록 해야 하고, 초밥용 쌀을 유럽에 수출하는 일본처럼 우리도 햇반 등 부가가치가 높은 즉석밥 등 수출상품의 다양화가 요구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주식인 쌀의 국내 소비시장의 변화를 주도하는 일이다. UR(우루과이 라운드) 초기에 생우(生牛)와 한우고기 수입을 반대하며 벌이던 격렬한 시위를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농업기술에 의한 확실한 품질 차별화로 지금은 한우 가격이 수입 소고기의 3배 정도 높은데도 소비자 신뢰를 바탕으로 먹고 싶어 하는 품목이 되었다.

울산농업기술센터에서 지난해 두서면 미호에 지력증진과 물 관리 품종, 수확 후 관리 등 품질 차별화 기술을 투입하여 시범사업을 실시한 “미호 지움”이라는 브랜드의 쌀은 시중 쌀값의 약 30%나 비싼 가격인데도 호평을 받으며 소비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지금은 WTO 농업부분 개도국 지위 상실에 대비한 국내외 대책으로 농업기술에 의한 품질 차별화와 공격인 마케팅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윤주용 울산시농업기술센터 소장·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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