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혁신도시를 걸으며
우정혁신도시를 걸으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1.20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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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가는 걸 세모(歲暮)라 하고, 하루가 가는 걸 일모(日暮)라 한다던가. 이제 불과 한 달 남짓이면 기해년(己亥年)도 저문다. 한 해의 끝자락이 가까우니 기온도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홍엽이다. 만산이 붉고, 천지가 노랗다.

흔히 한 해가 저물 때 쓰는 ‘다사다난’이라는 말이 올해만큼 또렷이 다가오는 해가 있었던가 싶다. 지난날을 되돌아보아도 쉰 몇 해의 내 인생에서는 기억에 잡히는 것이 별로 없다. 1973년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터 2018년 2월 영남대학을 그만두기까지 줄곧 학교를 오가는 ‘평온무사’한 일상이었다. 그러나 2018년 7월 지방의회 구의원이 되면서 그야말로 1년 365일을 바깥에서 보내는 다사한 패턴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11월 중순 이후에 시작되는 행정사무감사(이하 ‘행감’)는 정신적인 압박과 물리적인 시간 부족으로 귀가시간을 한밤으로 늦추기 일쑤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구의원 생활 2년차에 맞는 행감이 지금의 당면과제다. 필자를 비롯한 구의원들은 각 부서에 자료를 요청하고, 각 부서에서는 그 자료를 준비하느라 휴일과 평일, 밤낮이 따로 없다.

그런데 두번째 맞는 행감을 앞두고 행감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원래의 취지를 곱씹어 보자니 단순히 지난 1년간의 구정 관련 업무를 두고 잘잘못만 따져서 될 일인가 싶다. 결코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과 노력을 들여 공무원과 의원들 모두가 행감에 임하고 있는데, 그 결과가 일을 위한 일처럼 마무리된다면 이보다 더한 낭비도 없지 않을까.

행감 준비도 있고 해서 지난 일요일에는 승용차로 출근했다. 평소의 출근수단은 다양해서, 시내버스도 타고, 택시도 타본다. 이동수단이 다양하면 바라보고 살피는 일상도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이날은 혁신도시 가운데를 지나는 종가로를 달리다가 울산중학교 부근에 차를 세우고 일부러 종가로를 걸어 보았다. 종가로는 동서 방향으로 달리는 우정혁신도시의 간선도로다. 이 도로 남쪽 편으로는 인도를 제외하고도 폭이 약 12m에 총 길이가 6.4km에 이르는 녹도, 즉 산책로가 종가로와 나란히 조성되어 있다. 이처럼 훌륭하게 조성된 산책로이지만 정작 이 길을 이용하는 시민을 찾기는 어렵다. 잘 정비된, 무려 8만㎡에 가까운 면적의 산책로가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토지이용계획부터 문제가 있어 보인다. 도로 북쪽은 혁신도시 구역 경계로 개발이 불가능한 곳도 있고, 아파트단지나 평범한 상가 입구인 곳이 많다. 녹도가 조성된 남쪽의 경우도 산책로 방향으로 출입구를 만들 수 없는 단독주택지 아니면 뒷면이 드러난 상가 건물로 주 출입구는 없고 부출입구가 나 있다. 더구나 우정혁신도시는 남북 종심은 짧고 동서 방향이 특히 긴데, 종가로를 따라 기계적으로 녹도를 조성해 두다 보니 오히려 효율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 녹도를 활용하고 이를 통해 우정혁신도시의 활성화를 꾀할 방법은 없을까. 당장 떠오르는 아이디어는 녹도 일부를 떼어내 BRT 노선으로 하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잘 디자인된 전용버스가 녹도 속의 전용도로를 달리게 되면 혁신도시의 대중교통 문제도 해결되고, 관광객에게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 대신 종가로를 운행하는 지금의 시내버스 노선은 폐지하고 성안로, 달빛로, 이예로, 길촌길 같은 남북도로에는 시내버스나 마을버스를 투입해서 원활한 환승이 되도록 하면 된다. 장기적으로는 이 BRT 노선을 그대로 트램 노선으로 전환하면 우정혁신도시 활성화에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다음은 현재 재개발이 진행 중인 북정지구, 복산지구를 비롯한 구시가지와의 연계발전 방안에 대한 고민이 요구된다. 지역 간 연계의 핵심은 도로망인데, 이마저도 획기적인 개선은 요원해 보인다. 특히 이전 공공기관이 집중된 혁신도시 중심구역과 인접한 구시가지는 지형적인 한계와 아파트단지로 채워지는 재개발 방향 등과 맞물려서 시너지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지금 우리 정부에서는 <혁신도시 시즌2>를 핵심정책으로 내걸면서 새로운 발전 전략을 모색하고 있는데 울산시와 중구의 대응방안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과거와 같이 의타적이고 수동적인 혁신성장 전략으로는 혁신도시를 둘러싼 새로운 변화를 따라가기도 어렵고, 울산시와 중구의 발전을 이끄는 데도 여전히 한계가 있어 보인다.

안타까운 것은 필자의 경우 이번 행감에서도 혁신도시 발전이나 중구의 미래 변화를 위한 제언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엿보이지 않는 점이다. 몇 년 치의 구정백서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거의 비슷한 내용들로 가득하고 새로운 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내년이나 내후년에는 조금씩 달라지기를 기대하며 시작도 하기 전에 아쉬워지는 행감 준비를 늦은 밤 다시 시작해 본다. 세월은 시간과 함께 흘러, 만산의 홍엽도 바람에 흩어지며 기해년도 그리 흘러가리라.

강혜경 울산 중구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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