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의 천직이 간호라면 부부상담은 제2의 천직이죠”
“제1의 천직이 간호라면 부부상담은 제2의 천직이죠”
  • 김정주
  • 승인 2019.11.19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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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향 ‘성주향부부상담소’ 소장
성주향  ‘성주향부부상담소’ 소장.
성주향 ‘성주향부부상담소’ 소장.

 

수필 등단 26년 만의 두 번째 수필집

<아내의 대답>. 수필문학으로 등단한 지 26년 만에 펴낸 두 번째 수필집이다. 첫 번째는 11년 전(2008년)에 선보인 <남편이 준 숙제>였고, 이번 수필집은 존경하던 남편이 고인이 된 지 OO만에 풀어낸 해답 편인 셈이다.

그는 머리말에서 ‘울산문학을 비롯한 몇몇 문학지에 발표된 글들을 묶어본 것’이라고 했다. 이런 말도 남겼다. “저의 일생은 남편의 숙제를 풀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살아왔어요”라고. ‘유고집(遺稿集)’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과 함께….

제2집에는 자그마치 63편의 수필을 담았고 그 첫머리에 대표수필 ‘아내의 대답’을 올렸다. 이 글에서 그는 외과 전문의였던 남편(강재근, 2012년 작고, 전 ‘성남외과의원’ 원장)이 감독간호사였던 자신에게 내준 숙제가 ‘청소년 성교육’이었노라 회고했다. 아직도 숙제를 다 하진 못했지만 최선은 다했다고도 했다. 출판기념회는 23일 오후 3시, ‘문화쉼터 몽돌’(북구 산하동)에서 갖는다.

간호장교 전역…‘부르도자·면도칼’ 별명

현 직함이 ‘성주향부부상담소 소장’인 성주향(成周香) 여사. 1939년 3월 2일생이니 그의 말마따나 올해 산수(傘壽=만80세)를 맞았다. 그러나 초면에 나이를 제대로 어림잡는 이는 드물다. 몸과 마음이 젊은이 뺨칠 정도여서인지도 모른다. 사실 그에게는 아직도 ‘왕성함’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여섯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도 남는 그의 이력서가 그런 사실을 무언으로 말해준다. 그동안 받은 상만 해도 자그마치 32개.

사실 그는 독보적 이력의 늪 속에 자신을 내던졌다. ‘국군간호사관학교’를 졸업(1990)하고 간호장교로 5년간 복무하고 중위로 제대한 일부터가 그랬다. “처음엔 조산소 개업이 꿈이었죠.” 그런 생각으로 부산 일신병원에서 받은 조산교육이 그의 인생에 엄청난 전기가 될 줄은 조금도 예감하지 못했다. ‘엄청난 전기’란 부산의대를 나온 군의관 출신 남편과의 만남을 의미한다. 7년 전 작고한 남편 강재근 씨는 동래여중 친구의 두 살 위 오빠였다.

‘울산YWCA’ 창설에 팔을 걷어붙이고 초대회장(1982.6~ 1987.2)을 지냈고, 37년이나 쏟아온 애정은 아직도 식지 않았다. 그런 인연도 간호장교 시절 몸에 익힌 ‘군인정신’ 때문은 아니었을까? 내심을 감춘 채 별명이 무엇인지 넌지시 물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부르도자(불도저)’와 ‘도루코 면도날’. “한번 맘먹은 일은 끝장을 봐야 하고, 매사를 예리하게 처리한다고 해서 붙여준 별명일 거예요.” 그러면서 눈웃음을 짓는다. 소녀의 미소를 닮은….

2007년 7월, 한승수 국무총리로부터 국민훈장목련장을 수여받고 있는 성주향 소장.
2007년 7월, 한승수 국무총리로부터 국민훈장목련장을 수여받고 있는 성주향 소장.

 

이혼율은 느는데 부부상담은 현저히 줄어

‘성남프라자’에서 가까운 ‘성주향부부상담소’(중구 중앙길 29, 울산문화산업개발원 3층, 2013년 1월 개원)를 찾은 때는 지난 15일 오전. 문을 열자 시야에 잡힌 것은 스물여섯 가지나 되는 벽면의 액자들. 각종 자격증에서 자부심이 한가득 묻어난 표창장·훈장증까지, 팔십 평생의 프리젠테이션 무대를 보는 느낌이었다. “상담소 손님들에게 믿음을 드리기 위한 배려이기도 하죠.”

‘2007년 7월 4일’이란 날짜가 선명한 ‘국민훈장목련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가 직접 수여한 훈장.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울산지부 부설 성폭력상담소’ 소장으로 재임하던 때였고, 공적은 ‘여성 지위 향상을 통한 국가·사회 발전 이바지’였다.
‘남편이 준 숙제’이기도 한 대한가족계획협회장 명의의 ‘성교육·성상담 전문가 자격증’을 취득한 시점은 1997년 11월 20일. 그러고 보니 22년의 손때가 묻은 가보(家寶)와도 같은 것. 이제 이 자격증은 ‘부부상담사 자격증’(2011.6/한국부부상담학회)으로 거듭나면서 ‘50년 경력’의 간호사 자격증을 당당히 대신하기에 이른다. “부부상담은 저의 제2의 천직입니다.”

그러면서 상담사례를 들려준다. “최근엔 부부관계 문제로 새벽 1시까지 상담을 했는데 남편 양반이 신경정신과 진료가 필요한 비인격자여서 도무지 말이 안 통했어요. 부부관계도 사랑과 신뢰, 진실성이 바탕을 이룰 때 원만해지는 거잖아요.”

그런데 또 다른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다. 올 들어 두드러진 현상이지만, 상담소 문을 두드리는 부부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경제문제만은 아닌 것 같은데, 이혼율이 엄청 늘었다고 하잖아요.”

‘제27회 유재라봉사상(간호부문)’을 받은 다음날인 지난해 10월 30일, 울산간호사회가 롯데호텔에서 마련한 수상축하연에서 기쁜 표정을 짓고 있는 성주향 소장.
‘제27회 유재라봉사상(간호부문)’을 받은 다음날인 지난해 10월 30일, 울산간호사회가 롯데호텔에서 마련한 수상축하연에서 기쁜 표정을 짓고 있는 성주향 소장.

 

“유재라봉사상 수상이 인생 최고의 선물”

성주향 소장은 어떤 젊은이 못지않게 활동적이다. 특히 문화예술 분야라면 안방처럼 드나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후배들의 끈질긴 권유도 한 몫 하지만 시낭송 행사라면 낯가리는 일이 거의 없다. 천애란(재능시낭송협회 울산지회장), 구경영(북토크쇼 ‘꽃자리’ 대표) 후배의 행사 자리는 언제나 ‘단골선배’의 붙박이 자리로 비워둘 정도.

‘수필문학’ 등단(1993.7)으로 한국문인협회에 이름을 올린 지는 어언 26년. 그 이후로도 제16회 전국울산시조백일장 입상(2012.8), ‘시조문학 작가상’ 수상(등단, 2016.9), 울산시조시인협회 가입(2016.12)에 이르기까지 보폭은 너비를 모르게 뻗어났고, 이는 성주향 시조집 ‘느티블로그’ 발간으로 이어진다. 현재 울산문인협회, 울산수필가협회, 중구문학회, 나래문학회에도 적을 두고 있다.

그의 학구열도 남다른 데가 있다. 두 권의 수필집과 한 권의 시조집 외에 ‘상담사례집’(2010.12.울산지법)과 ‘물어봐도 돼요?’(가정폭력·성폭력·군대내 상담, 2014.10) 발간에도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린다. 2017년 9월에는 ‘울산광역시승격기여 공로패’를 받고 같은 해 11월에는 ‘덕양춘포문화상(사회봉사상)’ 수상의 영예를 거머쥐기도 한다. 주위에서는 ‘지칠 줄 모르는 그의 도전의지에 대한 당연한 보상’이란 말이 자연스레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감격스러웠던 수상은 따로 있다. 지난해 10월 (재)유한재단이 수여한 ‘제27회 유재라봉사상(간호부문)’이 바로 그것. ‘유한양행’ 설립자이자 독립운동가인 고 유일한 박사(1895~1971)를 기리기 위해 제정한 이 봉사상은 해마다 전국에서 1명에게만 주어지고, 울산에서는 성주향 소장이 현재까지 처음이면서 유일한 수상자다.

“제일 영광스럽고 감동적이었어요. 시상식이 열린 바로 다음날 울산간호사회(당시 회장은 김경리 춘해보건대 교수)에서 축하연까지 베풀어주셨으니, 생애 최고의 기쁨이었죠. 다른 데 같으면 ‘상 받았으니 한 턱 내라’는 게 상례일 텐데 도리어 축하 자리까지 마련해 주셨으니…. 그분들이 그랬어요. 울산 간호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고 말이죠.”

든든한 기둥 2남1녀, ‘남편 7주기’ 한자리에

12월 20일이면 약주를 좋아하시다 작고한 남편의 일곱 번째 기일이다. 이날은 남편이 그토록 애지중지했던 3남매가 일곱 손주 녀석들(손자 다섯, 손녀 하나)과 더불어 한자리에 모이게 된다. 가톨릭 신자인 성주향 소장은 이 모두가 하느님의 뜻이라고 믿는다. “기적 같은 일이죠. 서울에서 30년 가까이 살았던 아들 둘이 10년 전(2009년) 제 발로 한꺼번에 울산의 엄마 곁으로 와 주었으니….”

영국 브라이튼 대학에서 예술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큰아들 강종진 씨(54, 울산문화산업개발원 원장)와 홍대 미대를 나온 작은아들 강명훈 씨(50, 영상 제작업체 ‘굿 그리니아트’ 대표)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한양 음대를 나온 고명딸 강문주 씨(48)는 서울에서 ‘스트링앙상블 음악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신앙생활은 중구 우정성당 주일 새벽미사로 이어간다. “복산, 우정성당에서 사목회장을 10년이나 맡았던 남편이 떠난 뒤로는 조금 시들해진 것 같아서 교우들께 미안한 느낌이죠. 새벽미사만 해도 전엔 앞자리만 찾았는데 요즘은 뒷자리에만 앉게 되더군요.”
그래도 오늘의 성주향을 존재하게 해준 것은 신앙의 힘 덕분이란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성주향부부상담소도 그런 힘으로 굳건히 지켜나갈 생각이다.
글=김정주 논설실장·사진= 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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