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한 수: 귀수편 - “마음만 내려놓으면 그 곳이 바로 놀이터야”
신의 한 수: 귀수편 - “마음만 내려놓으면 그 곳이 바로 놀이터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1.1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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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신의 한 수: 귀수편'
영화 '신의 한 수: 귀수편'

 

굳이 어려운 바둑이 아니라 오목 정도만 둘 줄 알아도 “바둑판이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말엔 누구든 쉽게 공감할 것이다. 우선 오목을 두든 바둑을 두든 바둑판에서는 늘 살벌한 전쟁이 벌어진다. 바로 뺐고 빼앗는 전투.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다 누군가가 승리를 하면 누군가는 반드시 패배를 하게 돼 있다.

삶도 전쟁이다. 바늘구멍 같은 성공을 위해 그곳에서는 늘 진검 승부가 벌어지고 결국엔 승자와 패자가 뚜렷이 구분된다. 다소 삐딱한 시선으로 본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승자란 남의 것을 많이 빼앗는데 성공한 사람을 의미한다. 바둑판에서의 승패도 흑이든 백이든 상대편의 돌을 얼마나 많이 빼앗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바둑판과 인생의 공통된 생리로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받는다는 점도 있다. 경기가 시작되면 정해진 시간 안에 반드시 돌을 놓을 곳을 골라야 하듯 시간의 흐름 속에 매순간 다가오는 수많은 경우의 수에서 우리 역시 한 가지 선택을 해야 한다. 무서운 건 그 선택이 늘 옳을 수만은 없다는 것. 아니, 오히려 잘못된 선택으로 패배는 물론 삶 자체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바둑판에서는 그것을 ‘패착(敗着)’이라 부른다.

한 번 잘못 돌을 놓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 판에서 지게 되는 아주 나쁜 수를 의미한다. 바둑이든 인생이든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어 흥미롭긴 하지만 한편으론 무섭다.

목적론적 세계관으로 접근해도 바둑과 인생은 닮았다. 바둑은 승리를, 인생은 성공을 목표로 흘러간다. 하지만 성공은 쉽게 오지 않는다. 언제나 꼼꼼한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성공을 위해서는 ‘행동’이 필요하다. 단순한 ‘희망’이나 ‘생각’만으로는 안 된다. 행동으로 반드시 옮겨야 한다. 바둑판에서는 그것을 ‘착수(着手)’라고 한다. 바둑판에 한 수씩 돌을 두는 일을 의미한다. 또 행동으로 옮기더라도 ‘잘’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력자도 찾아야 하고 특히 앞을 내다보고 움직여야 한다.

바둑판에서 ‘행마(行馬:세력을 펴서 돌을 놓기 시작하는 것)’나 ‘포석(布石:중반전의 싸움이나 집 차지에서 유리하도록 초반에 돌을 벌여놓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끝까지 잘 견뎌내야 한다. 성공으로 가는 길에는 늘 수많은 시련과 고통이 존재하기 마련. 승리의 여신은 언제나 그것들을 이겨낸 자에게 미소 짓는다. 바둑판에서도 마찬가지다. 중반으로 접어들면 ‘단수(單手:돌이 먹히기 직전 상태)’에 빠지기도 하고, ‘곤마(困馬:적에게 쫓겨 위태로운 돌)’가 되기도 한다. 때론 ‘사활(死活)’을 걸어야 할 때도 있다.

그러한 위기들을 잘 이겨내고 나면 승리는 점점 가까워지는 법. 마침내 계가(計家:대국을 마친 후 승패를 가르기 위해 집 수를 세는 것)를 통해 승패가 결정되고 승패가 계속 쌓이다 보면 고수와 하수도 나눠지기 마련이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바둑판에서나 실제 삶에서나 고수에게 세상은 ‘놀이터’지만 하수에겐 ‘지옥’이다. 그리고 전작인 조범구 감독의 <신의 한 수>에 이은 리건 감독의 <신의 한 수:귀수편>도 이 논리는 여전하다. 둘 다 인생을 바둑판에 빗댄 것도 같다.

하지만 이번에 개봉한 2편은 하수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비록 하수라도 지옥이 아닌 놀이터처럼 세상을 살 수 있는 방법론을 제시하는데 있어서만큼은 전편과는 많이 다르다. 사실 전편에서는 제목처럼 다들 영원한 고수가 되기 위해 ‘신의 한 수’를 찾는데 집착했다.

하지만 신의 한 수란 건 없었고, 허 목수(안길강)의 입을 통해 이런 메시지를 던졌다. “우리들 삶에 ‘신의 한 수’는 없다. 그냥 하루하루 묵묵히 사는 게 최선의 수다.” 그랬던 게 이번에는 허일도(김성균)의 암자를 관리하는 구멍가게 주인을 통해 이런 대사를 날린다. “마음만 내려놓으면 그 곳이 바로 놀이터야.”

사실 그렇다. 패착(敗着)이니, 착수(着手)니, 행마(行馬)니, 단수(單手)니, 곤마(困馬)니, 사활(死活)이니, 계가(計家)니 등등의 머리 복잡한 이야기들을 피하려면 바둑 안 두면 그만이다. 바둑도 따지고 보면 승부에 집착하게 되는 일종의 도박. 해서 노름꾼들의 이야기를 다룬 <타짜>의 원작자인 김세영씨도 원작만화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같은 짓을 되풀이하면 오락도 고문이 되고, 같은 사람들끼리 같은 승부를 되풀이하면 모두 패자가 될 뿐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나는 가끔 취미로 즐기던 모든 내기와 게임에서 손을 떼었다. 게임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게임하는 즐거움이 있으면 게임하지 않는 즐거움도 있다. 프블릴리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노름을 잘할수록 사람은 나빠진다고.”

2019년 11월7일 개봉. 러닝타임 106분.

취재1부 이상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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