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왕의 평생교육 Letter] 울산의 혁신교육을 위한 거버넌스 과제
[신기왕의 평생교육 Letter] 울산의 혁신교육을 위한 거버넌스 과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1.14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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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 전 이맘때 강남의 한 호텔 연회장에서 정부의 주요한 교육정책의 하나였던 「사교육 없는 학교」를 위해 수고하시는 학교장들을 위로하는 행사가 있었다. 행사 첫날 교육부장관님이 직접 행사장을 방문해서 관계자를 격려했다. 장관은 전쟁의 참화를 극복하고 미국의 대통령도 부러워하는 우리나라 공교육에 대한 자부심을 역설하며 정부의 「사교육 없는 학교」 사업에 대한 협력을 당부했다. 장관의 연설이 끝나자마자 일부 교장선생님들이 어려운 점을 하소연하듯 쏟아내면서 잠시 장내가 소란해졌다.

그들은 사교육이 증가하는 원인이 학교교육 때문만은 아니듯 사교육을 줄이는 일이 학교의 노력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책임을 학교에 돌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주장이 받아들여져 이듬해에는 「사교육 없는 학교」 심사에서 사교육 경감 기준이 완화되었다.

「사교육 없는 학교」는 공교육의 내실화를 위해 노력하고 사교육 없이도 다양하고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는 학교를 발굴하여 지원하는 정책이었다. 「사교육 없는 학교」에 대한 학교 현장의 반응은 차가웠고 그 결과도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함께 노력한 학교와 교육청 담당자들의 헌신적인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공교육의 내실화는 학교 구성원의 자발적 참여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과 특히 지역사회의 관심과 협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직접 체험을 통해 깨달았다는 점이 「사교육 없는 학교」 정책을 추진하면서 얻은 소득이었다.

며칠 전 울산중구와 울산시교육청이 지속가능한 마을교육 공동체를 조성하기 위해 ‘혁신교육지원센터’를 개소했다고 밝혔다. 혁신교육지원센터는 지역에 잠재된 인적·물적 자원을 발굴해 혁신교육을 주도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할 것이라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학교와 지역사회의 협력을 당위적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미국, 일본 등 대부분의 국가와는 달리 일반자치와 교육자치가 분리된 우리나라에서 학교가 소속된 교육청과 지역사회를 주관하는 지자체의 협력이 쉬운 것만은 아님은 분명하다.

울산형 「혁신학교」인 ‘서로나눔학교’는 ‘서로 배우고 성장하는 행복한 학교’를 비전으로 경쟁 중심, 서열 중심의 학교교육에서 벗어나 학생들의 삶과 연계된 교육, 배움이 즐거운 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학교이다. 「사교육 없는 학교」가 방과 후 프로그램의 확대를 통해 학교교육을 보완하는 데 치중했다면 「혁신학교」는 학교교육과정 자체의 혁신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측면을 개선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지자체와 교육청과의 협약은 학생의 성장과 발달을 위한 「혁신학교」의 비전을 지역사회와 공유하고 협력하는 거버넌스를 의미한다.

어니스트 보이어는 ‘우수한 학교는 지역사회의 무관심한 바다 위에 섬처럼 고립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학교와 지역사회가 학생들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것은 지난 경험에 비추어도 바람직한 일이다. 울산은 혁신교육을 위한 거버넌스의 출발을 알렸지만 풀어야할 과제도 많다.

우선 혁신교육을 위한 거버넌스는 혁신교육의 가치와 비전을 공유하는데서 시작한다. 혁신교육은 학교구성원, 가족, 대학, 기업, 지역 기관 등과 교육적, 도덕적,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조합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듀이 이후 전개된 진보적(progressive) 교육사조의 흐름에서 비롯되었다. 학교구성원과 정책참여자들이 아이들의 성장과 삶을 위한 진보적 교육사조의 흐름과 철학을 이해하고 공감하지 않는다면 울산의 혁신교육은 또 다른 유형의 어설픈 방과후 활동을 지원하는 수준에 머무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혁신교육을 위한 거버넌스의 핵심은 학교행정에 지나친 부담을 지우지 않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점이다. 혁신교육이 학교행정에 지나친 부담을 지운다면 한때 누군가의 힘들었던 추억으로만 남는 정책으로 끝날 수 있다. 이를 위해 교육청과 지자체를 연결하는 코디네이터를 배치·운영하는 것이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혁신교육의 철학과 비전을 공감하는 코디네이터를 배치하는 것을 혁신교육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당신은 어떠한 학교의 모습을 원하십니까? 학생, 학부모가 만족하는 학교교육 모델을 찾고자 하는 울산교육청의 노력에 지역사회 모두가 관심을 가질 때이다.

신기왕 교육학박사·울산평생교육진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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