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규의 황칠 이야기] ① 황칠나무의 역사
[최명규의 황칠 이야기] ① 황칠나무의 역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1.13 21: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황칠나무(이하 ‘황칠’)의 학명은 흥미롭게도 ‘Dendropanax morbifera Leu’, 의역하면 ‘만병통치 인삼나무’다. 우리나라 남부해안과 제주도, 포항 해안가에도 자생하는 우리나라 고유의 수종이다.

황칠에는 인삼에 들어있는 ‘사포닌’ 성분이 인삼보다 10배 이상 많고 각종 질환, 특히 심혈관계 질환 치료에 효과가 탁월하다는 사실이 다수의 논문과 특허출원이 입증하고 있다.

실제로 항암, 항당뇨 효과는 물론 노화방지, 성장 촉진, 골다공증 예방, 고혈압 치료, 고지혈증 치료, 변비 해소, 통풍 치료, 정혈작용, 지방분해, 신경안정, 뇌졸중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조선후기의 실학자 이익(1681~1763)의 ‘성호사설’은 중국의 진시황제가 사신 서복에게 명해 구해오라고 했던 ‘동방의 불로초’가 바로 황칠나무라는 이야기를 전한다. 고려시대 기록에는 원종이 재위 12년(1271년), 강화도에서 육지로 나올 때 가지고 나오던 황칠을 모두 잃어버리게 되자 보관 중이던 황칠 열 항아리를 먼저 보냈다는 기록이 나온다. 또 충렬왕은 재위 2년, 사신을 몽고로 파견할 때 황칠을 같이 보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로 미루어, 고려 왕실에서는 황칠을 몽고 조정에 조공으로 바친 것을 알 수 있다. 또 신라시대의 해상왕 장보고(785~846)는 금값의 10배를 받을 정도로 황칠을 교역상품의 으뜸으로 치고 소중하게 다루었다고 한다.

조선전기의 기록으로, 집현전 부교리 김예몽 등이 세종 27년(1445)에 완성한 의학서 ‘의방유취’ 속의 ‘금칠환방(金漆丸方)’을 꼽을 수 있다. 이 책에는 황칠이 부녀자의 풍혈적체 치료에 좋을 뿐더러 월경 시 무릎아래 통증이 있을 때 황칠이 가미된 금 처방을 한다는 기록이 나온다.

중국의 과도한 조공 수탈은 황칠나무 자생지의 백성들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고역에 시달리던 이들 지역 백성들은 일부러 황칠나무에 구멍을 뚫어 말라죽게 하거나 몰래 도끼로 찍어 없애기도 했다. 이 때문에 황칠나무는 그 이후 약 200년간 역사에서 지워지기도 했다.

조선후기의 실학자 정약용(1762~1836)은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황칠나무에 대한 시를 직접 쓰고 황칠을 보물 중의 보물이라고 추켜세운 바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황칠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고 미술사학자 홍사준(1905~1980)은 백제에 관한 논고(1972)에서 황칠을 중요한 대 중국 교역품이라고 소개했다. 문화재위원을 지낸 이종석은 ‘조선칠의 특성에 관하여’라는 논문에서 황칠을 소상하게 다룬 바 있다.

1990년대에는 과학기술처의 의뢰로 전남대에서 도료와 약용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지금은 수많은 논문과 특허가 존재한다.

보길도에 천연기념물 제479호로 지정된 나무가 있을 정도로 황칠은 완도 지역의 상징적 산림자원이며, 현재 200여 농가에서 240만 그루를 기르는 중이다.

우리 울산에서는 2003년 ‘농업회사법인 (주)영남알프스황칠’에서 처음 연구를 시작한 끝에 2016년 황칠나무 재배에 성공한다. 난대성이서서 겨울철 영하 2도 이하의 날씨가 열흘 이상 계속되면 잘 자라지 않는 황칠나무가 드디어 울산에서도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필자는 재배 체험을 밑천으로 <황칠나무 묘목의 재배방법>이라는 주제의 특허(제10-1769262호)를 특허청에 등록하기에 이른다.

2019년 현재 영남알프스 자락에서는 20년이 넘는 황칠나무 500여 그루가 8년생 200여 그루, 3년생 수천 그루와 함께 자라고 있다. 내년에는 많은 열매를 채취해 묘목을 3만 그루 넘게 심어 울주군의 대표나무로 키워 울산의 첨단바이오산업에 기여할 생각이다. 황칠나무의 역사가 담긴 다산 정약용의 한시 <황칠>을 독자 여러분에게 소개한다.

<황칠(黃漆)>

君不見弓福山中滿山黃= 궁복산에 가득한 황칠나무를 그대 못 보았던가/ 金泥瀅潔生光= 깨끗한 금빛 액체 반짝반짝 윤이 나서/ 割皮取汁如取漆= 껍질 벗기고 즙 받기 옻칠 받듯 하는데/ 拱把殘裳濫觴= 아름드리나무라야 겨우 한잔 넘친다/ 箱潤色奪碧= 상자에다 칠을 하면 윷칠 정도가 아니어서/ 子腐那得方= 잘 익은 치자는 어림도 없다 하네/ 書家硬黃尤絶妙= 글씨 쓰는 경황으로는 더더욱 좋아서/ 蠟紙羊角皆退藏= 납지고 양각이고 그 앞에선 쪽 못 쓴다네/ 此樹名聲達天下= 그 나무 명성이 온 천하에 알려지고/ 博物往往收遺芳= 박물군자도 더러더러 그 이름을 기억하지/ 貢苞年年輸匠作= 공물로 지정되어 해마다 실려 가고/ 胥吏徵求奸莫防= 징구하는 아전놈들 농간도 막을 길 없어/ 土人指樹爲惡木= 지방민들 그 나무를 악목이라 이름하여/ 每夜村斧潛來= 밤마다 도끼 들고 몰래 와서 찍었다네/ 聖旨前春許免= 지난봄에 성상이 공납 면제하였더니/ 零陵復乳眞奇祥= 영릉복유 되었다니 이 얼마나 상서인가/ 風吹雨潤長= 바람 불고 비 맞으면 등걸에서 싹이 돋고/ 擢秀交靑蒼= 가지가지 죽죽 뻗어 푸르름 어우러지리.

최명규 ‘영남알프스황칠’ 대표·이학박사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