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생태환경 도시에 ‘문화’를 덧입힌다
[특집]생태환경 도시에 ‘문화’를 덧입힌다
  • 김보은
  • 승인 2019.11.11 1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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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특집] 도시브랜드로서의 문화도시 울산
21세기 각종 한계 직면에 문화도시 속속 등장 추세
시, 시립미술관 건립 등 문화도시 주력사업 추진 중
내년 문체부 공모 참여, 지정시 5년간 최대 200억원
울산 문화시설 기반 ‘43곳’불과… 인프라 구축 시급

“나는 우리나라가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길 원한다.”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백범 김구 선생의 말이다. 선생의 생각처럼 세계는 이제 부강한 나라보다 아름다운 나라를 꿈꾼다. 이 흐름에 맞춰 한국의 산업수도 역할을 했던 울산도 공해(公害)도시의 오명을 벗고 문화라는 새로운 색 입히기에 한창이다. 과연 울산이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문화도시’로 거듭날 수 있을지 개괄한다.

<편집자주>

울산시가 문화도시 관련 주력 사업 중 하나로 ‘반구대 암각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올해 초 대곡리 암각화 현장을 찾은 정재숙 문화재청장과 송철호 울산시장.
울산시가 문화도시 관련 주력 사업 중 하나로 ‘반구대 암각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올해 초 대곡리 암각화 현장을 찾은 정재숙 문화재청장과 송철호 울산시장.

 

◇ 전 세계 도시 패러다임 변화, 경제→ 문화

소비자는 브랜드를 소비한다. 기업의 이름만 들어도 연상되는 기업 제품만의 독특한 기능, 품질의 우수성에 값을 치르는 것이다.

보통 브랜드는 심볼, 로고, 슬로건 등 다양한 형태를 지니는데 이는 단순히 경쟁사와 차별되는 수단에 그치지 않고 일관된 기업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도구가 된다.

이 개념은 도시에도 적용할 수 있다. 도시를 하나의 상품으로 보는 ‘도시브랜드’는 하나의 도시만이 가진 자연환경, 역사적 특징, 문화적 매력 등을 토대로 구축돼 해당 도시만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잘 차려진 도시브랜드라는 상차림은 맛집을 찾아오듯 관광객을 도시로 이끌고 이는 곧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진다.

그래선지 현재 전 세계 크고 작은 도시들은 새로운 도시브랜드 확립을 위한 전략 짜기에 분주하다. 특히 ‘문화도시’를 표방하는 도시들이 속속 등장하는 추세다. 도시의 패러다임이 변화한 것이다.

20세기까지만 해도 어떻게 경제적으로 도시를 부강하게 하는 지가 중요한 문제였다. 개발 위주의 양적 성장에 치중했던 것이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고층화, 과밀화, 환경파괴, 양극화 등의 여러 한계에 직면했고 도시들은 타개책으로 인간적이면서도 창조적인 도시에 눈을 돌리게 됐다. 자연히 이러한 측면이 강조되는 문화예술의 중요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어진 상황이다.

울산시가 배달의 다리부터 울산시립미술관까지 미술관 가는 길을 연결하는 중구 문화의 거리 개발사업을 새롭게 추진할 예정이다. 사진은 중구 문화의 거리에서 진행된 거리공연 모습.
울산시가 배달의 다리부터 울산시립미술관까지 미술관 가는 길을 연결하는 중구 문화의 거리 개발사업을 새롭게 추진할 예정이다. 사진은 중구 문화의 거리에서 진행된 거리공연 모습.

 

◇문체부 문화도시 지정 추진 등… 市, 문화도시 브랜딩 사업 ‘활발’

울산도 ‘문화도시’를 도시브랜드로 내세우는 도시 중 하나다. 송철호 울산시장의 민선 7기가 들어선 지난해부터 울산시는 각종 문화도시 관련 정책을 추진하며 ‘문화 불모지’란 꼬리표 떼기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제법 눈에 띄는 굵직한 주력 사업만 해도 ‘울산시립미술관 건립’, ‘반구대 암각화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울산국제영화제 개최’ 등이 있다.

시 관계자에 따르면 열악한 문화예술 인프라를 지원하는 ‘꿈꾸는 예술터’ 사업, 배달의 다리부터 시립미술관까지 미술관 가는 길을 연결하는 중구 문화의 거리 개발사업 등 시가 새롭게 추진할 문화도시 관련 사업들도 잇따라 밑그림 그리기에 들어간다.

또한 울산시는 ‘문화도시’로서 행정적 기반을 닦기 위해 내년 6월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도시 지정 공모에 참여할 방침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5월 발표한 ‘문화도시 추진계획’에 따라 지자체를 문화도시로 지정·육성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말 지정 공모를 거쳐 1차로 대구시, 경기도 부천시, 강원도 원주시 등 10곳을 예비도시로 지정했고 2022년까지 30개 내외의 문화도시를 추가 지정할 계획이다. 문화도시로 지정된 지자체는 5년간 국비 지원, 컨설팅, 도시 간 교류 등에 최대 200억원 가량의 각종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울산시는 현재 공모 신청서에 창의적이고 지속가능하며 지역의 특색을 담기 위한 ‘울산문화도시 조성계획안’ 수립 용역을 진행 중이다. 용역 업체로는 울산발전연구원이 선정됐고 최근 중간보고회를 마쳤다.

용역 발주 등을 맡은 울산문화재단 측은 최종 용역 결론이 나올 때까지 문화예술단체, 환경단체, 도시재생·디자인, 일반시민 등이 중심이 된 각각의 패널을 구성해 의견을 수렴하고 관련 조례 제정, 시·구·군의 거버넌스 구축 등으로 문화도시 조성 계획을 수립한다는 입장이다.

◇울산 왜 문화도시여야 하나… “노동자 헌신 보상 위해”

울산시가 이같이 ‘문화도시’를 도시브랜드로 구축하는데 적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울산의 역사에 있다.

울산은 1962년 1월 27일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된 이후 반세기 넘는 세월동안 한국의 대표적인 ‘공업도시’ 혹은 ‘산업도시’로서 경제성장을 주도해왔다.

바다를 메워 공장을 세웠고 덕분에 일자리가 늘어났지만 고향을 떠나야 하는 이주민도 생겼다. 본격적으로 공장이 가동된 이후에는 공장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와 폐수로 환경이 오염됐고 노동자들은 크고 작은 산업 재해에 노출됐다. 공업도시는 울산시민에게 경제적 풍요를 안겨줬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 역시 감당하게 했다.

울산문화재단 전수일 대표이사는 “울산은 산업도시로서 한국의 경제 부흥에 기여했지만 이로 인한 공해, 산업재해 등의 문제를 떠안았다. 노동자들의 헌신에 대한 보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50여만명의 울산 노동자들의 삶을 위로하고 치유해주는 문화예술 복지가 절실하다. 하지만 산업도시란 타이틀이 무색하게 울산에는 노동자 문화관조차 없는 상태”라고 꼬집었다.

이어 전 대표는 “고용과 산업에 대한 생산성을 유지하면서 삶터는 사람이 살기 적합한 생태환경도시가 되고 거기다 문화예술이 입혀진다면 그것이 바로 울산의 미래비전이 아니겠는가”라며 “사람답게 사는 도시, 문화도시로 만들어야 한다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문화 인프라 구축을 위한 투자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내다봤다.

경영난으로 내년 운영 중단 위기에 처한 민간 레지던시 모하창작스튜디오 전시실 모습.
경영난으로 내년 운영 중단 위기에 처한 민간 레지던시 모하창작스튜디오 전시실 모습.

 

◇문화도시 브랜딩 첫걸음 ‘문화 인프라 구축’

전 대표의 의견처럼 울산이 ‘문화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선 문화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 울산시가 문화도시 관련 정책을 펼치려 해도 기반 여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이를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울산시민들이 문화생활을 향유할 수 있는 기반시설은 턱 없이 부족한 상태다.

올해 1월 1일을 기준으로 한 문화체육관광부의 ‘전국 문화기반시설 현황’ 자료를 살펴보면 전국 2천823곳의 문화기반시설 중 울산에는 있는 시설은 단 43곳이다.

이는 공공도서관 19곳, 박물관 10곳, 문화예술회관 5곳, 지방문화원 5곳, 문화의 집 4곳을 포함한 수치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전체 시설 수와 박물관 수는 세종 다음으로 가장 적었고 공공도서관의 경우 전국 최하위였다. 미술관이 없는 곳도 전국에서 울산과 세종밖에 없었다.

2021년 8월 준공을 목표로 지난 8월 29일 공사에 들어간 울산시립미술관의 존재를 고려해도 울산의 문화기반시설은 전국에서 손꼽힐 정도로 부족하다.

더 큰 문제는 문화기반시설을 늘려야 할 상황에 민간에서 운영 중인 일부 시설들이 경영난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민간 레지던시 ‘모하창작스튜디오’다. 2010년부터 운영된 모하창작스튜디오는 경영난으로 내년 문을 닫을 처지다.

지난해 ‘모하아트센터’라는 사회적 기업을 창업해 경영난을 해결하려 했지만 이 마저도 공모사업을 위주로 진행하다보니 수익이 불안정한 상태다.

박태효 모하창작스튜디오 대표는 “올해 울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레지던시 사업을 이어갈 수 있었으나 내년에는 어려울 것 같다. 지원을 받아도 시설 개보수, 재산세, 전기세 등 시설을 유지하는 데 자부담으로 3천만원이 든다. 이익이 나올만한 구조가 아니라 고스란히 적자를 본 셈이 됐다”며 “더이상 여력이 안돼 내년에는 직접 운영하지 않고 공간을 임대해주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박 대표는 “예술가들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사업이 레지던시 사업이다. 울산 정도의 도시 규모에는 민간 레지던시가 적어도 3~4개는 있어야 하는데 지난 10년간 추가로 생기지 않았다는 건 메리트가 없다는 것”이라며 “조례를 바꿔서더라도 레지던시를 비롯한 민간 예술단체들이 사업을 유지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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