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맞수
영원한 맞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1.11 18: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등학교 때의 내 짝궁 이야기다. 우리의 첫 만남은 입학식 다음날 맨 앞줄 책상 하나를 두고 이루어졌다. 맹랑하게도 이 친구는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다가 내 얼굴을 연필로 크로키(스케치)하더니 슬쩍 내밀며 나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내 최고의 콤플렉스인 튀어나온 뻐드렁니가 포인트였다.

이 친구는 강산이 다섯 번이나 바뀐 지금까지도 나를 쥐었다 놓았다 하며 가만히 두질 않는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친구에게 ‘나’라는 존재는 평생의 놀림감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인생의 반려자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오늘도 밀고 당기며 신경전을 거듭한다. 우리의 연결고리는 바둑이다. 처음에는 내게 대여섯 점을 놓고 두더니 오륙년 정도 지나면서부터는 맞바둑 상대가 되어 팽팽히 맞선다.

바둑만큼 정신세계에 몰입되어 아슬아슬하고 박진감 넘치는 두뇌싸움은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국수도 아닌 아마5급 정도지만 우린 한 판 한 판에 모든 자존심을 다 건다.

바둑을 흔히 ‘인생의 축소판’이라고도 한다. 가로, 세로 열아홉 줄에 인생살이가 다 들어있다고 했던가. 바둑은 두 집을 내야만 살 수가 있다. 바둑판 위에 내가 놓은 돌이 사석(死石)이 되지 않도록 고뇌하고 확인하는 모습들이 마치 우리들의 일상과도 같다는 의미일 것이다.

성공한 사업가인 이 친구가 고교 동기들에게는 만인의 친구다. 성공한 이면에는 ‘신뢰’라는 강한 이미지가 깔려 있다. 이는 한 판 한 판의 바둑 속에서도 낱낱이 읽을 수가 있다. 인생을 살아가는 해답도 바둑 속에 있다는 것일까. 흑과 백의 싸움에는 세상의 이치가 다 들어있다고나 할까. 바둑은 두면 둘수록 신기함을 더 느낀다.

모든 인생이 그렇듯 바둑 또한 욕심과 방심은 절대 금물이다. 돌다리도 두드려 가면서 건너듯 한 점 한 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대마를 잡기 위해 미끼를 던지기도 하고 포위망을 치기도 한다. 욕심을 내다보면 도리어 상대의 올가미에 갇혀 발버둥을 치기도 한다.

대마 싸움에서는 신경이 날카롭다. 잡느냐 잡히느냐, 사활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끝까지 물고 늘어지거나 패싸움도 해 가면서 상대에게 약을 올리기도 한다. 그게 화근이 되어 언성이 높아지는 일들이 매번 벌어지기도 한다.

인생 최고의 덕목은 겸손함과 평상심이다. 웃고 우는 일들이 늘 공존하듯 바둑에서도 희비가 엇갈린다. 평상심을 잃거나 방심하면 일순간 판세가 역전된다. 이는 즉시 자기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바둑은 인내력 싸움이다. 인내력은 너그러움의 매개체다. 이 친구는 품성이 넓어 모든 친구들을 아우르지만 바둑만큼은 한 치의 양보도 없다. 사활이 걸리면 뚫어질 정도로 들여다보고 생각하고 고뇌하는 모습을 보면서, 성공하는 사람은 역시 뭔가 다르다는 것을 매번 느낀다.

바둑 역시 첫 판이 중요하다. 기선 제압을 위하여 먼저 신경전에 돌입한다. 관전하는 친구들 중에는 이렇게 계속 두면 너희 둘 다 제 명(命)대로 못 살 거라고 우스개 섞인 농담도 건네지만 바둑이 어디 그런가? 서로가 고도의 평상심(平常心)으로 대국을 하면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끝날 때까지 긴장의 연속이고 머릿속은 빗발치는 전쟁터다. 이럴 땐 여지없이 한두 집 또는 무승부로 판가름이 난다.

바둑은 수만 번을 두어도 같은 판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 법. 우리의 삶 역시 똑같은 날들이 하루도 없듯 하루하루는 한 판의 바둑이다. 그래! 너는 ‘바둑돌’이고 나는 매일 두들겨 맞는 ‘바둑판’이라 치자. 우리는 영원한 맞수인 거야.

강걸수 수필가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