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을 의미하는 숫자 ‘12’를 되새기며
‘완전’을 의미하는 숫자 ‘12’를 되새기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1.11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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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서 심심찮게 만나게 되는 숫자가 있다. 바로 ‘12’(십이)란 숫자다. 십이지(十二支) 또는 십이간지(十二干支), 십이지상(十二支像)이란 말에는 모두 12(十二)란 숫자가 들어가 있다. ‘1년 열두 달’ ‘예수의 열두 제자’ ‘야곱의 열두 자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十二支派)’ 속에서도 어김없이 12란 숫자를 만날 수 있다.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간직하고 있을까?

열두 제자, 열두 자녀, 열두 지파란 말에서 짐작이 가듯 특정 종교(기독교)에서는 ‘12’란 숫자를 매우 의미 있게 받아들인다. ‘완전’ ‘완벽’과 더불어 ‘축복’의 의미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환단고기’나 ‘마고할미 전설’은 물론 이집트 신화나 수메르 신화에서도 12란 숫자는 매우 유의미하고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심지어 히타이트 문명, 그리스 문명에서도 12란 숫자는 ‘신비(神?)’ 혹은 ‘신성(神聖)’의 의미로 여겼다. 본란에서는 편의상 12의 의미를 ‘완전’ ‘완벽’으로 한정지어 음미하기로 한다.

“울산제일일보가 11월 12일로 창간 12주년을 맞았다.” 바로 이 문장에도 ‘12’란 숫자가 두 번이나 들어가 있어 묘한 메시지를 던진다. 창간 12주년을 맞기까지 바른 언론매체로서의 소명(召命)을 충실히 다했느냐고 준엄하게 꾸짖는 소리로도 들린다. 그러나 이 매체를 12년간이나 지탱하고 이끌어온 울산제일일보 가족들로서는 “정말 열과 성을 다해 소명의식을 불태웠노라”고 분명한 목소리로 대답할 자신은 없다. 잡다한 주위의 여건들이 ‘정론직필(正論直筆)’의 등댓불을 환하게 밝히는 데 도움만 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기 있는 목소리로 다짐할 자신은 있다. 그 목소리는 창간 12주년 기념일을 심기일전의 전기로 삼아 그리스 신화 속 시지포스(Sisyphus)처럼 ‘正論直筆’의 바윗돌을 우직하게 밀어 올리는 소명의 몸짓을 한시도 멈추지 않겠다는 다짐의 목소리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용기를 북돋워 줄 또 하나의 애정 어린 목소리는 애독자 제위와 울산시민 여러분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더러는 채찍 같은 고함소리가 될 여러분의 정의로운 목소리는 분명, 언론매체가 지향해야 할 바른 길을 똑바로 가르쳐주는 성능 좋은 내비게이션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방신문은 지방시민들의 채찍과 격려를 먹고 사는 유기체나 다름없다. 울산제일일보도 그런 숙명을 타고 났다. 그러기에 본보는 울산시민과 애독자 제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자기반성과 자기계발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본보는 언제나 울산시민의 편에 서서 삶의 질 높이기에 앞장서는 ‘울산 지성의 대변지’, 그리고 정치적 시류에도 중심을 잃는 일이 없는 ‘균형감 있는 정론지’로서의 역할을 다해 나갈 것을 창간 12주년 기념일을 맞아 다시 한 번 굳게 약속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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