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무식, 천지불인…태풍에도 장점이
지성무식, 천지불인…태풍에도 장점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1.11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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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운행은 지성무식(至誠無息)이라지만 지구의 기상상태는 천지불인(天地不仁)이란 말처럼 종잡을 수가 없다. 우리가 오감으로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기상변화의 구체적 결과물의 하나가 태풍이다.

올해 한반도에서는 새로운 기록이 세워졌다. 태풍 7개가 북상해 우리나라에 직접 상륙하거나 영향을 준 것으로, 태풍 ‘사라’가 찾아왔던 1959년 이후 가장 많았다. 특히 9월 태풍은 이례적이었다. 북서태평양 태풍감시구역에서 발생한 태풍 6개 가운데 3개가 우리나라로 올라와 1904년 관측 이래 최다치를 기록했다. 일본을 강타한 ‘하기비스’는 100년에 한 번도 있기 어려운 폭우를 몰고 와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과거 우리는 봄부터 가뭄이 지속되면 무룡산, 고헌산, 파래소에서 비가 오기를 바라는 기우제를 지냈다. 또 추석에는 천지신명과 조상에게 오곡과 백과를 차려놓고 감사의 예를 올렸다. 그런데 추석은 100번 중에 78번이 양력 9월에 찾아오고, 그러다보니 설익은 제물이 제사상에 올라오는 일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더 크고 강한 태풍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은 우리의 정성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닐까? (참조: ‘하나만 바꾸자, 한가위 날짜’ 울산제일일보 2016.9.1.)

과학의 시대에 지극히 비과학적, 비상식적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 아직은 과학의 힘만으로 태풍을 막기 어려울 뿐 아니라 과학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온난화 현상이 나타나 지구환경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태풍이 없기를 바라지만 태풍이 생성되는 지역은 너무 덥고 소멸되는 지역은 너무 추워서 사람이 살기에 부적합하다. 그러나 지구에서 사람이 잘 사는 지역은 대부분 지진과 태풍이 많은 곳이다.

우리는 여기서 ‘태풍이 왜 발생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부딪힌다. 태풍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잠시 살펴보자. 자전축이 23.5도로 기울어져 회전하는 지구의 표면 위에서 뜨거워진 공기덩어리는 저기압 상태인 태풍의 중심으로 들어가다가 ‘전향력’이라는 힘에 의해 휘어지면서 시계의 반대방향으로 회전하기 시작한다. 그 이후 공기덩어리는 따뜻한 바다에서 많은 양의 수증기를 공급받아 회전력이 점점 더 강해지고, 태풍이 품고 있는 비구름과 바람도 동시에 강해진다. 즉 태양열이 강한 북반구 열대바다 위의 공기덩어리가 충분히 가열되면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북쪽의 찬 공기와 뒤섞여 움직이면서 열적 평형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북쪽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실내에 난로를 피워두면 따뜻해진 난로 주위의 공기가 창가 부근의 차가운 공기 속으로 파고드는 이치와 같다.

태풍은 북상하다가 해수면 온도가 낮아지는 중위도 부근에서 세력이 약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면서 세력을 그대로 유지한 채 다가온다. 특히 9월 말이나 10월 초의 태풍은 한반도 남쪽 곡창지대를 통과하는 경우가 많아 수확기의 농작물들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 하지만 이러한 태풍도 우리에게 좋은 점은 있다. 지금부터라도 태풍의 장점을 찾아내 최대한 활용했으면 한다.

태풍은 피해가 가장 많은 바다에 가장 큰 혜택을 준다. ① 논밭을 갈아 농사를 짓듯 바다를 휘저으며 적조 현상을 해소시키고 ② 물속에 공기를 공급해 많은 플랑크톤이 생기게 해서 물고기들을 풍부하게 만든다. ③ 공기 중의 이물질을 정화시켜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④ 물 덩어리를 대이동시켜 물 부족 현상을 해소시키며 ⑤ 저위도 지방의 대기 중 에너지를 고위도 지방으로 운반해 지구의 남북 온도를 유지시키는 순기능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느끼는 태풍은 규모나 방향이 매번 달라 예측불허다. 인간이나 지구생물의 기본적인 삶과는 관계없이 천지불인(天地不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특히 올해는 과수·벼농사부터 가을 김장채소까지 농작물 피해가 너무나 크다. 이에 대비하면서 태풍의 장점을 잘 활용하는 일에 우리 모두 지혜를 모아 나갈 때이다.

윤주용 울산시농업기술센터 소장, 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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