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언배 교수의 ‘자유의 혼’
김언배 교수의 ‘자유의 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1.10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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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13년째 맞이한 태화강 국제설치미술제(TEAF, 이하 ‘미술제’)가 지난달 18일부터 27일까지 열흘간 태화강국가정원 삼호철새공원에서 열렸다. ‘잉태의 공간, 기원의 시간’을 주제로 삼은 미술제는 ‘태화강국가정원 지정 선포식’에 때맞춰 열려 의미를 더했다. 특히 미술제 장소를 태화강 둔치에서 삼호대숲 철새공원으로 옮김으로써 철새생태관광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한 것은 덤으로 얻은 소득이었다.

미술제를 둘러본 시민들이나 참여 작가들은 지난해까지 ‘태화들’로 불리던 태화교 부근 둔치에서 하던 행사를 삼호철새공원 잔디밭으로 옮겨 진행한 것은 접근성, 장소성 면에서 더없이 훌륭했다고 입을 모았다. 시민의 관심을 높이고 관객 수도 늘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번 행사에는 해외작가 4명과 국내작가 16명 등 20(팀)의 설치미술 작품 36점이 선을 보였다.

이들 출품작 가운데 특히 관심을 고조시킨 작품은 단연 김언배 울산대 교수(섬유디자인학과)의 ‘자유의 혼’이었다. 총 36점의 미술(조각)작품 중 유일하게 동적인 작품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유의 혼’을 한 가지 의미로 한정지을 수는 없다. 다양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 탓이다. 낮에는 태화(太和)의 바람에 대형 애드벌룬으로 변했고, 밤이면 야간조명을 받으며 색다른 볼거리로 등장했다. 삼호대숲 잔디밭이란 장소성, 그리고 태화강국가정원으로 탈바꿈한다는 시의성 모두에 적절히 부합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자유의 혼’은 떼까마귀의 귀향에 맞추어 구름 속의 학이 되는가 하면 울산만에서 용트림처럼 솟구쳐 오르는 귀신고래가 되기도 했다. 벽오동의 배경은 봉황이 나래치듯, 여명(黎明)에 계명(鷄鳴)하듯, 구고(九?)에 학명(鶴鳴)하듯 다양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잔디밭의 토룡인 듯하여 다가가면 어느새 학이 되어 잔디밭을 거닐고 있었다. 태화강 용검소의 황룡이 승천하는 듯, 시은소(施恩所=계약궤를 덮는 뚜껑→은혜를 베푸는 곳)의 거룹(cherub=모세의 계약궤를 지키는 날개 달린 천사)이 하늘을 나는 듯, 떼까마귀와 백로가 태화로 어울리는 듯했다. 태화풍(太和風)이 건듯 불면 떼까마귀의 입장단에 늙은 벽오동이 어깨춤을 추기도 했다.

‘자유의 혼’은 저녁이면 잔디밭에 내려앉아 잠을 잔다. 새벽이 되면 이슬을 털며 잠에서 깨어난다. 그리고는 태화강에 얼굴을 비추며 단장을 한다. 이윽고 두둥실 떠오르는 것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자유의 혼’ 이야말로 울산광역시가 겨냥하는 ‘도약하는 울산’, ‘비상하는 울산’, ‘해오름의 도시 울산’을 상징하는 브랜드슬로건 ‘THE RISING CITY’였다. ‘자유의 혼’의 승천과 하강은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을 인도하는 불교의 ‘화현성’이다. 동시에 시은소로 재림하시는 기독교 하느님의 ‘이적성’이다.

‘자유의 혼’이 설치된 작품마당에는 행사기간이 지났는데도 시민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졌다. 이는 지신밟기로 다져진 잔디밭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기간에는 ‘울산학춤’의 시연도 있었다. 울산학춤보존회(회장 박윤경)에서 스스로 재능을 기부한 행사였다. ‘울산학춤’은 ‘자유의 혼’이 되었고, ‘자유의 혼’은 ‘울산학춤’이 되었다. ‘자유의 혼’은 낮이면 청잣빛 울산하늘에서 무삼(舞衫)의 운학무(雲鶴舞)가 되었고, 밤이면 항아와 함께하는 월투가(月偸歌) 부르는 가선(歌扇)이 되었다.

이러한 김 교수의 실천은 그가 지역 문화예술인들과 30년 이상 소통한 지울파(知蔚派) 교수였기에 가능했다. ‘자유의 혼’은 울타리 밑을 떠나지 않는 작은 새의 몸짓이 아니다. 구만리장천을 훨훨 날아오르는 큰 새의 비상(飛翔)이다. “탄복하고 한탄하여 고저의 음조(音調)가 나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여, 나아가 손이 춤추고 발이 뜀을 알지 못하기에 이른다.(嗟歎之不足 故不知 手之舞之 足之蹈之)”는 무도(舞蹈)이다.

‘자유의 혼’의 승침(昇沈)은 고가(高歌)와 한무(閑舞)이며, 무삼(舞衫)과 가선(歌扇)이다. 저녁이면 수만 마리의 떼까마귀를 삼호대숲에 잠들게 하는 자장가 소리가 고가(高歌)와 가선이며, 아침이면 하얀 버선 같은 백로를 초록의 대나무 장대 끝에 맘껏 부푼 목화처럼 피게 하는 마력이 한무(閑舞)와 무삼(舞衫)이다. 밤새 촉촉해진 태화의 감로(甘露)에 젖어 잠자는 ‘자유의 혼’은 다시 수만 마리의 떼까마귀가 되어 여명의 청잣빛 하늘을 디자인했다. 디자인은 군무가 되고 자유가 됐다. 그 광경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 자유인지!

‘자유의 혼’은 어머니가 장독대에서 정성껏 올리는 소지(燒紙) 의식이다. 허공을 가볍게 올라가는 소지는 회피하는 냉소가 아니라 따뜻하게 다가가는 온유가 있을 때만 자유롭게 날릴 수 있다. ‘자유의 혼’은 존재자들이 바라보는 존재이며, 디스토피아(distopia)를 떠나 유토피아(utopia)를 지향하는 태화이고, 학성이며, 울산이다. ‘자유의 혼’은 승천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강도 있다. 승강을 반복하는 하는 행위는 태화이고, 중생이며, 존재자들이다. 자유의 혼은 과거의 기억을 안고 미래의 발전을 향해 난다. 유토피아 울산 ‘자유의 혼’이여, 훨훨 날아라!

김성수 조류생태학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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