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네이터:다크페이트 - 그 해 여름, 천도극장
터미네이터:다크페이트 - 그 해 여름, 천도극장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1.07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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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1991년 여름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고 여름방학을 막 앞두고 있던 그 때 한 편의 할리우드 영화가 개봉을 하는데 바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터미네이터2>였다. 한 마디로 난리가 났었다. 아마 천도극장이었을 거다. 울산 성남동에 나란히 위치해 태화극장과는 지금도 헷갈리지만, 아무튼 그해 여름 천도극장 일대는 <터미네이터2>를 보려는 사람들로 주말이면 100m가 넘는 긴 줄이 계속 이어졌다.

1984년에 개봉했던 <터미네이터>가 청소년관람불가였고, 그 때까지 집에 비디오도 없었던 탓에 전편도 보지 못한 채 난 친구 손에 이끌려 무작정 천도극장으로 향하게 됐다. 지정좌석제가 아니었던 그 시절, 운이 없었던 우린 좌석 확보에 실패해 결국 서서 보게 됐다.

앞 사람 때문에 스크린이 가려져 가끔은 까치발을 세우기도 했지만 전편에 대한 친구의 대략적인 스토리를 들은 뒤 보게 된 <터미네이터2>는 다리가 아프다는 생각을 한 번도 못하게 만들었다.

팔팔한 10대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시작하자마자 몰아치는 긴장감 넘치는 액션과 흡입력 있는 스토리에 금세 빠져들고 말았던 것. 클라이막스는 전편에서 사라 코너(린다 해밀턴)를 죽이려 했던 터미네이터 T-800(아놀드 슈왈제네거)이 이번에는 그녀의 아들인 존 코너(에드워드 펄롱)를 보호하러 온 게 밝혀지는 장면. 전편을 아는 사람들은 당연히 가질 수밖에 없었던 선입견이 무너지는 그 순간, 다들 짜릿한 반전의 묘미로 영화관 곳곳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고, 옆에 있던 친구 입에서도 “우아!”라는 감탄사가 연발됐다.

참, 그 땐 인터넷이 없어 스포일러가 귀했던 시절이었다. 5년 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유주얼 서스펙트>가 개봉했던 때는 전국 곳곳에서 영화를 막 보고 나온 관객이 “절름발이가 범인이다!”라고 크게 외친 뒤 잽싸게 도망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터미네이터2>는 클래스가 달랐던 것. 생각지도 못했던 반전이었지만 오히려 경배심이 생겼던 것 같았다. 그러니까 다들 인류의 문화유산과도 같은 이 영화만큼은 스포일러를 하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지 않았을까. 실제로 <터미네이터2>와 관련해 포털 사이트에 새겨진 수많은 네티즌 평점 글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게 “인류의 문화유산”이라는 짧은 글귀였다.

그렇다. <터미네이터2>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까진 아니더라도 쿨하게 인류문화유산 정도로는 충분히 불릴만하다고 본다. 또 모르지. 천 년 정도 뒤엔 우리 후손들이 실제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까지 등재시켜줄 지도. 문화예술이란 게 별건가? 사람들을 두루두루 즐겁게 해주면 되는 거지.

잠깐 옆길로 샛지만 아무튼 그 후로도 <터미네이터2>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관객들로 하여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고, 마지막 장면에서 울부짖으며 내린 존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셀프 제거를 위해 T-800이 스스로 용광로 속으로 들어가면서 지켜 올린 ‘엄지 척’은 극장 안 모든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고 말았다. 전설은 그렇게 탄생했다. 무명시절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자면서 꾼 꿈에서 영감을 얻어 시작된 <터미네이터>시리즈는 1991년 <터미네이터2> 이후 판권 문제로 카메론 감독의 손을 완전히 떠나게 됐다.

그렇게 해서 2003년 <터미네이터3:라이즈 오브 머신>, 2009년 <터미네이터:미래전쟁의 시작>, 2015년 <터미네이터 제네시스>가 제작됐다.

그런데 이들 역시 개인적으로는 나름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 생각하는데도 카메론 감독이 빠졌다는 이유만으로 속된 말로 ‘헛방’이라는 세간의 비판에서 자유롭질 못했다.

그리고 <터미네이터2> 이후 28년 만에 카메론 감독이 다시 복귀해 각본과 제작에 참여한 작품이 바로 이번에 개봉한 <터미네이터:다크페이트>다.

그래서였을까. 솔직히 오프닝부터 전율이 일었다. 그건 <터미네이터2>를 잇는 진정한 후속편이라는 걸 보여주려 하듯 첫 장면부터 등장하는 28년 전 그대로의 사라코너(린다 해밀턴)와 존 코너(에드워드 펄롱), 또 T-800(아놀드 슈왈제네거)의 모습 때문이었고, 그 순간 앞서 장황하게 늘어놓았던 그 시절 천도극장에서 처음으로 <터미네이터2>를 봤던 추억이 주마간산(走馬看山)처럼 지나가더라.

어느덧 40대 중반인데 내 나이쯤 되면 ‘전설(Legend)’이란 게 제법 많아진다. 같은 추억인데도 전설이 되는 건 아마, 특별히 좋았던 추억인데도 다시 돌아갈 순 없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전설은 그냥 전설로 남아야했지만 <터미네이터:다크페이트>를 본 그날 난 잠시나마 다시 천도극장 안에 있을 수 있었다. 천도극장은 2005년 2월에 폐관됐다.

2019년 10월30일 개봉. 러닝타임 128분.

취재1부 이상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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