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만에 미국에서 꽃피운 호접난 (下)
18년 만에 미국에서 꽃피운 호접난 (下)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1.07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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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황 사장이 미국 진출 과정에서 좌충우돌하며 겪었던 이야기를 들어본다. 그의 이야기를 다 하려면 끝이 없을 거라고 했다.

미국 진출 과정은 복잡하면서도 흥미진진했다. 영어도 잘 안 되는 ‘농사꾼’이 농림부와 울산시를 설득하고, 협동조합 투자까지 받아 미국으로 오는 과정은 길고도 험난했다. 미국에 정착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함께 진출한 5명이 재배 노하우가 서로 다른데도 번갈아가며 난을 키우다 보니 상품 비율이 낮게 나와 애를 먹었다.

“미국에 왔을 때가 48세 때였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도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올 때만 해도 농장을 일궈놓고 3년이면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한국처럼 관리해서는 되지 않았어요. 결국 눌러앉을 수밖에 없었지요.”

처음에는 호접난을 한국에서 가져왔다. 하지만 한미 양국 정부 간 협정이 없었던 탓에 호접난을 화분에 담은 채 반입할 수가 없었다. 흙이나 화분에 묻어 미국으로 유입될지도 모를 병원균을 차단하기 위해 흙을 털고 가져오다 보니 로스(손실)가 20~40%나 됐지만 어쩔 수 없이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난을 대만으로부터 수입하기로 했다. 대만과 미국 간에는 화분에 담은 채 들여올 수 있는 협정이 체결돼 있었던 것이다. 황 사장은 대만 호접난을 들여오면서도 애틀랜타 총영사관과 주미대사관에 화분에 담은 채 들여올 수 있는 협정을 맺게 해달라고 호소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당시 애틀랜타 총영사와 주미대사관 농무관께서 큰 도움을 주셨어요. 십여년의 노력과 우리 공관의 도움으로 2018년 9월, 드디어 화분에 담은 채 들여올 수 있는 협정이 양국 간에 발효된 것입니다.”

협정에 따른 USDA의 승인으로 2019년 4월 9일 처음으로 화분에 담긴 호접난이 미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농촌진흥청에서 개발한 ‘러블리 엔젤’이라는 품종을 비롯한 한국의 호접난은 품질이 매우 좋다. 4계절이 뚜렷해 꽃 색깔도 선명하다. 현재 미국 내 한국인 농장에서 필요로 하는 난은 1년에 약 300만 개. 지난해 한국에서 소비된 호접난 600만 개의 절반 수준에 이른다.

이제 수출 전진기지 역할은 할 수 있게 됐지만, 문제는 또 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난을 공급해야 하는데, 그럴만한 시설을 갖춘 농가가 드물다는 점이다. 울산시에서 지난해 지원한 시설은 올해부터 가동될 예정이다. 그리고 미국 현지 월마트나 홈디포에는 생화(生花)가 살 수 있는 조건이 덜 갖춰져 있다. “좋은 환경에서는 4개월 정도 피어 있는데, 꽃이 스트레스를 받아 불과 한 달 만에 시들어버리는 거지요.”

그래서 황 사장이 미래 산업으로 착안한 것이 ‘가든 센터’다. 온실을 갖춘 가든 센터를 소비자와 가까운 지역 곳곳에 설치해서 꽃을 공급하는 것이다. 이것을 10개, 더 나아가 100개를 세우면, 미주 한인들이 ‘뷰티 서플라이’ 업종을 잡고 있듯이 가든 산업도 잡을 수 있다는 구상이다. 올랜도의 한인 농가들이 재배하는 관엽식물도 가든 센터에 공급해서 꽃과 조경 산업의 전진기지 역할을 맡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한국의 청장년들이 미국에 새로 진출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황 사장은 “기본 생산은 한국에서 하고 넓고 큰 시장인 미국에서 그 열매를 맺는 형태의 농업으로 가야 한국 호접난 산업은 비전이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현재 울산에서도 농소와 서생 지역을 중심으로 호접난 재배농가가 분포되어 있다. 아열대 지방이 원산지인 호접난은 특성상 영양생장 시기에 높은 온도가 필요해 에너지비용과 경영비가 많이 든다. 그런데 필자는 온산공단의 폐기물 소각장에서 나오는 열을 활용해 호접난을 재배한 경험이 있다. 이를 감안하면 서생 원자력단지 같은 곳에 호접난 특화단지를 조성하고 원자력발전소의 냉각열을 활용해 에너지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면, 한번 도전해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울산이 그동안 축적해온 호접난 생산기술과 4계절 내내 선명한 꽃 색깔을 낼 수 있는 기후조건 등의 장점을 살린다면 미국 시장을 새로 장악할 수 있는 기회를 18년 만에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윤주용 울산시농업기술센터 소장·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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