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나가보면 애국자가 된다
외국에 나가보면 애국자가 된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1.03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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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여행한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등 동구라파 세 나라는 모두 조상들의 역사유적을 이용한 관광 수입에 크게 의존하는 나라들이었다. 이들이 관광상품으로 내놓은 옛 궁전이나 성당, 성곽, 구시가지의 건물들은 모두 놀랄 만큼 웅장하고 화려했다. 하지만 너무 인공적인 것 같아 거부감도 생겼다. 2000년대 초 북경의 천안문과 만리장성을 보고 ‘왜 저렇게 높은 담장을 쌓았을까?’ ‘저렇게 큰 돌들을 산으로 옮기고 높이 쌓으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생했을까?’하고 생각했던 것처럼 ‘성당을 왜 저렇게 높고 웅장하게 짓고 온갖 조각품과 그림들을 올려놓아야 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천장에 매달려 그림을 그린 화가는 일을 끝내고 사망하기까지 했단다. 종교가 정치를 지배하던 중세였으니 정치권력을 누르기 위한 의도였는지 모른다. 아니면 그 사람들의 생각이 외형과 물질에 치우치다 보니 하늘의 권능이나 권위도 그렇게 나타내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 희생을 강요하면서까지 웅장하게 만들어 자신들의 권위와 위엄을 과시하거나 신성시하게 해서 사람들을 굴복시키고 도전을 못하게 하려는 불안감의 발로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한편, ‘그랬더라도 현재의 후손들을 먹여 살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묘한 대비가 되어 잘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 판단이 어려웠다.

반면, 귀국하는 대로 중학 동기들과 문화탐방으로 보러 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해인사 장경판전’은 이와 완전히 대비되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는 문화유산·기록유산·자연유산·무형유산·복합유산이 있는데 15세기에 지어진 장경판전은 1995년 12월에 ‘문화유산’이 되었다.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600년 이상 팔만대장경판을 훼손이 없도록 제대로 설계한 건축기술 덕분이었다. 이는 팔만대장경이 12년 늦은 2007년 6월에야 ‘기록유산’이 된 데서도 알 수 있다.

장경판전은 환기와 온도·습도조절이 자연적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건물과 문의 크기, 방향 등을 배치했다. 그뿐만 아니라 좀도 안 쓸고 쥐나 나방, 새나 잠자리도 목 들어가게 땅 속의 지기(地氣)까지 이용한 ‘에너지 건축법’(필자가 지은 말)으로 설계되었다. 그러기에 최신 과학으로는 복원도 할 수 없다고 한다. 실제로 1970년대에 낡은 장경판전을 허물고 현대식 건물로 새로 짓는 문제가 검토되었으나 이태연 박사 등의 적극적인 반대로 보류되었고, 그 덕분에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세계 건축기술 발전의 본보기가 되었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이런 건축물 중에는 751년에 건축되어 1995년에 세계문화유산이 된 석굴암도 있다. 석굴암은 인공건축물이면서도 1천200여년 동안 통풍이 완벽하게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1910년대에 손을 잘못 대는 바람에 문제가 생겼다. 그 이후 일제와 우리나라에서 독일 등 세계 최신 건축기술자들을 초빙, 복원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현재는 에어컨을 설치해 통풍을 시키고 있다. 1천200년 전 우리 선조들의 건축기술이 현대과학을 앞질렀던 것이다.

동유럽 여행에서 본 그 화려하고 웅장한 인공건축물들이 조금도 부럽지 않았다. 오히려 ‘습기를 차단시키지 않고 통풍을 시킨’ 석굴암과, 자연에너지들의 상호작용으로 습기는 물론 좀까지 막은 장경각전을 보면서, 우리 선조들의 놀라운 지혜를 더욱 높이 평가하게 되었다. 우리 선조들은 인간과 건물 하나도 자연과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건축물을 자연과 어우러지게 지어 제 기능을 하도록 설계했던 것이다.

결코 웅장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자연친화적이고, 검소하면서도 에너지 흐름까지 담아내는 정교한 설계를 통해 건축 본래의 기능을 잘 살려내고 국민들의 희생도 줄일 수 있게 했던 우리 선조들의 지혜. 이 지혜로 이루어낸 우리의 건축기술이 미래 인류사회의 건축방향도 제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에 나가보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실감났다.

박정학 역사학박사·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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