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들:풍문조작단 - 가짜 뉴스에 대한 단상
광대들:풍문조작단 - 가짜 뉴스에 대한 단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0.31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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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광대들:풍문조작단'  한 장면.
영화 '광대들:풍문조작단' 한 장면.

 

단독 직입적으로 말해서 김주호 감독의 <광대들:풍문조작단>는 오늘날의 ‘가짜 뉴스’에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다. 영화는 망하고, 관람객 평점도 그리 높지 않지만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만큼은 매우 굵직하다. 또 영화도 재밌다. 한 마디로 꽤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허나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다 성공할 순 없는 법.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 운대가 맞지 않았던 것뿐이지 않았나 싶다.

역사물인 이 영화의 배경은 조선 세조 때다. 세조가 누군가. 조선시대 통틀어 최고의 왕이었던 세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켜 조카인 어린 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했던 냉혈한이었다.

세종 같은 어진 임금 밑에 세조 같은 자식이 있었다는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지만 역사란 게 그렇다. 그건 돌고 돌기 마련. 일찍이 영국의 역사학자인 E.H.Carr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 했고, <광대들:풍물조작단>도 조선 세조 때 있었던 일을 통해 지금의 우리 모습을 되돌아 보고자함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주된 대상이 이번엔 조금 색다르게 ‘언론’에 대한 것이다.

많이들 알겠지만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은 조선시대 왕들의 재위기간 동안 실제 있었던 일과 확인된 사실만을 기록하도록 한 역사서다. 조선 건국의 아버지인 태조부터 25대 왕인 철종 때까지 기록된 이 실록은 권수만 무려 1천893권에 이른다. 그런데 특이하게 세조 때의 일을 기록한 세조실록에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어난 40여건의 기이한 일들이 기록돼 있다.

가령 세조가 세운 원각사를 뒤덮은 황색 구름과 꽃비, 오대산에서 몸을 씻고 있던 세조의 등을 문질러 피부병을 낫게 해줬다는 문수보살, 또 세조를 태운 가마가 지나가자 방해가 되지 않게 자신의 가지를 들어 올려준 소나무 등등. 분명 황당한 이야기지만 세조실록에 엄연히 기록돼 있다.

특히 인간이 손을 들듯 가지를 들어 올린 소나무에겐 지금의 장관급인 ‘정이품’이라는 벼슬이 내려졌는데 그 소나무가 바로 지금도 속리산에 있는 그 유명한 ‘정이품송(천연기념물 제103호)’이다.

그런데 <광대들:풍문조작단>은 상상력을 발휘해 세조실록에 기록된 그 같은 기이한 일들을 조작하는 작자들이 있었다고 가정하는데 그들이 바로 광대패인 덕호(조진웅) 패거리였다. 덕호 패거리는 다들 연출의 대가들이었다.

영화 속에서 그들은 황색 구름과 꽃비, 문수보살, 가지를 들어 올린 소나무 등을 직접 연출해 영화 중반까지는 세조(박희순)와 그의 최측근인 영의정 한명회(손현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얻게 된다. 세조와 한명회가 덕호 패거리에게 그런 일을 시킨 연유는 패륜을 저지르며 찬탈한 권력이지만 백성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싶었기 때문.

그러니까 세조에 대한 신성화 작업을 통해 그가 왕이 된 것에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했던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바로 세조실록을 기록했던 당시 사관(史官)들이다. 사관들은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조작된 그런 기이한 일들을 그대로 기록했던 거다. 물론 영화상에서 말이다.

‘기자(記者)’라는 직업을 한자로 뜻을 풀이하면 바로 ‘기록하는 자’다. 이 말인 즉은 조선왕조실록을 기록했던 당시 사관들도 지금으로 치면 기자인 셈. 결국 영화는 세조실록에 기록된 40여건의 기이한 일들은 모두 지금 세간에 유행어처럼 쓰이고 있는 ‘가짜 뉴스’라고 우회적으로 말한다.

또 권력에 아부하다 죽을 고비를 넘긴 뒤 정신을 차린 덕호 패거리의 모습을 통해 권력이 진실이 아니라 진실이 권력임을 힘주어 이야기한다.

엄혹한 시대, 진실을 말해야 하는 언론까지 쉽사리 권력의 시녀가 되었던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래서 시대를 막론하고 권력의 눈치를 보며 언론까지 침묵할 때 진실을 말해왔던 건 언제나 예술이 아니었을까. 그게 가능했던 건 바로 예술은 풍자나 해학이 가능하니까. 그렇게 위기의 상황에서 예술가들이 오히려 거짓으로 진실을 말해왔다. 내 말이 틀렸나?

꼴에 기자지만 벌써 15여년 전에 수습을 받을 때 우릴 가르쳤던 분이 기자라는 직업을 ‘진실을 보여주는 창(窓)’이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니까 창문을 통해 보듯이 그냥 있는 그대로를 기사로 보여주면 된다는 뜻. 아무 것도 모르던 그 시절, 처음 그 가르침을 접하고는 마음속으로 ‘그게 뭐가 어려워’라고 생각했더랬다. 하지만 문제는 창은 무생물이지만 기자는 생물이라는 것.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

하물며 판사에게도 피고인에 대한 괘씸죄라는 형법 법전에는 없는 마음 속 죄가 존재하는데 한 꼭지의 기사가 나오려면 내 생각과 사상부터 시작해 자신과 회사의 이익, 또 인맥은 물론 심지어 그날의 컨디션까지 뒤섞일 수밖에 없다. 기자도 결국 사람이니까. 해서 이젠 아주 잘 안다. 진실의 창? 그거 열라 어렵다는 걸. 결국 기자도 도를 닦아야 한다.

2019년 8월21일 개봉. 러닝타임 108분.

취재1부 이상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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