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일은 ‘90주년 학생독립운동일’
11월 3일은 ‘90주년 학생독립운동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0.31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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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1월 3일은 우여곡절이 참으로 많았던 날이다. 기념일 명칭만 해도 시대상황에 따라 몇 차례나 바뀌는 비운을 맞았기 때문이다. ‘광주학생운동일’, ‘학생의 날’,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이란 명칭 변화가 생생한 흔적이다. 하지만 이날이 3·1만세운동, 6·10만세운동과 더불어 일제강점기 3대 민족운동의 하나로 꼽히는 사실을 아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이날은 비공휴일이지만 엄연한 법정기념일이다. 6·25전쟁 휴전 직후인 1953년 10월 20일, 대한민국 제16차 임시국회에서 정부기념일로 정한 것이 그 효시다. 그 무렵 국회는 ‘젊은 학도들에게 민족적 사명을 다하도록 사기를 드높여 주자’는 취지로 11월 3일을 ‘학생의 날’로 지정하는 결의안을 의결했다.

‘학생독립운동’이란 말은 울산시민 대부분에게 생소하게 들릴 것이다. 일제강점기인 1929년 11월 3일, 전남 광주에서 시작된 항일 학생운동이었기 때문이다. 이 운동의 불씨는 일본인 남학생이 지폈다. 그 해 10월 30일 오후 통학열차에서 내려 개찰구를 빠져나가던 광주여고보(전남여고 전신) 여학생들의 댕기머리를 일본인 남학생이 잡아당기며 희롱했던 것이다. 이를 보다 못한 조선인 남학생들은 일본인 학생들과 난투극을 벌였고, 나흘 뒤(11월 3일)에는 광주여고보 학생들이 시험을 집단 거부하고 학교를 뛰쳐나가기에 이른다. 그 불씨는 마침내 전국으로 번져 약 5개월에 걸쳐 194개 학교에서 5만4천여명이 ‘민족차별 철폐’, ‘식민지노예교육 철폐’의 목소리를 높이게 된다.

그러나 이 기념일이 걸어온 길은 그리 순탄치 못했다. 시월유신 직후인 1973년 3월 30일 대통령령에 따른 기념일 통폐합으로 폐지됐다가 11년 후인 1984년 9월 22일 ‘제1회 학생의 날’(국가기념일)로 되살아났다. 지금처럼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이름이 바뀐 것은 2006년 2월 9일의 일이었다. 연합뉴스 기자는 31일자 기사에서,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은 정치·사회적 흐름에 따라 갖은 수난을 겪어야 했다고 회고했다. 이 기념일이 1953년에 제정된 ‘학생의 날’에 뿌리를 두고는 있지만 한국전쟁 직후 취지와는 달리 ‘항일’이 빠졌고, 박정희 정권 때는 교련사열이나 정치적 행사를 학생의 날 행사에 포함시키면서 학생군사훈련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한동안 광주일고동문회가 주관해오던 학생독립운동일 기념행사는 현 정부가 들어선 지난해부터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고, 올해도 비슷한 규모로 열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기념행사가 ‘학생독립운동기념탑’이 있는 특정지역 행사로 그쳐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최근 “성대히 치르는 것 못지않게 학생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전국의 모든 학교와 지역들이 함께 치르는 것이 중요하다”며 11월 3일 기념식이 전국행사로 이어지기를 희망했다.

학생독립운동 90돌을 맞아, 울산시민들도 그 참뜻을 새기면서 광주 학생독립운동의 여파가 우리 지역에 미치지는 않았는지 그 흔적을 찬찬히 살펴보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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