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으로 母 살해한 20대 징역 7년
정신질환으로 母 살해한 20대 징역 7년
  • 강은정
  • 승인 2019.10.29 21:0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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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법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책임·역할 중요… 민·관 공조시스템 도입해야”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20대 남성이 망상으로 인해 어머니를 살해한 사건을 놓고 재판부는 “사회적 책임과 역할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울산지법 형사11부 박주영 부장판사는 존속살해 혐의로 기소된 A(22)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하고, 치료감호를 명령했다고 29일 밝혔다.

A씨는 지난 6월 20일 흉기로 어머니를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범행 직후 스스로 112에 신고하며 “엄마를 죽였다”고 했고, 즉각 체포됐다.

조사과정에서 사건에 대해 진술하지 못하거나 엉뚱한 얘기를 하는 등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A씨의 이 같은 행동은 그의 삶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A씨는 평범한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자랐다. 대기업에 다니는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어머니, 형과의 사이도 좋았다. 부모님은 ‘아픈손가락’이라고 A씨를 생각하며 혹시나 차별하지는 않을까 편애하지 않고 사랑으로 보살폈다.

A씨는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입냄새가 난다’라거나 ‘행동이 느리다’는 이유에서였다. 교실이나 화장실에서 폭행당하는 일도 많았지만 부모님께 알리지 못했다. “걱정할까봐 내색한 적 없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중학교 진학 후에도 왕따는 계속됐다. 결국 A씨는 우울증과 회피성 성격장애 진단을 받았는데 약물 치료를 거부했다.

고교 진학을 앞두고 교사는 A씨가 고등학교에 가더라도 적응 못할 것이라며 대안학교를 가길 권유했다. 대안학교 입학 후에는 선배 말에 겁을 먹고 등교를 하지 않았고, 결국 자퇴했다.

A씨는 스스로를 고립시켰고, 외출을 안했다. 인터넷 게임을 하거나 사이트 게시판에 댓글을 달며 일상을 보냈다.

이러한 삶 속에서 지난해부터 아버지가 해외에서 근무했고, 형 역시 다른 지역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어머니와 둘만 살게됐다.

그러면서 망상이 시작됐다. “모든 문제를 엄마 때문”이라고 했고,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결국 A씨는 어머니가 나를 죽일것 같다는 환상에 시달렸고, 약 복용을 거부하면서 증세가 심각해져 어머니를 살해하는데 이르렀다.

A씨는 조사에서 “약 먹으면 이상해질 것 같았고, 엄마가 적으로 보였다”고 진술했다.

이렇게 재판에 넘겨진 A씨를 안타깝게 여긴 아버지는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아버지는 탄원서에서 ‘믿을 수 없는 사고로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졌고, 지옥의 한 가운데로 내동댕이쳐진 심정이다.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을 동시에 잃어버린 무능한 가장이지만, 아들이 재기할 기회를 달라. 아내도 하늘나라에서 아들의 선처를 구할 것’이라고 적었다.

A씨 이모 역시 ‘항상 언니 옆에서 칭얼대던 아이가 자신을 평생 보살펴 줄 존재를 스스로 떠나보냄으로써 받게 될 벌과 남은 형부에 대한 안쓰러움 때문에 편지를 쓴다. 언니도 제가 이 편지를 써서 아이에게 도움이 되길 바랄 것’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이 모든 내용을 종합해 결론을 내렸다.

박주영 부장판사는 “자신을 낳고 길러준 어머니 생명을 앗아간 참혹한 범죄로 어떠한 이유에서도 용납되거나 용서받을 수 없는 반사회적 범죄”라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사회적 책임과 역할에 대한 제언도 나왔다.

박 부장판사는 “합리적 이성과 자유의지를 전제로 형벌을 부과하는 전통적인 형사법 체계는 피고인처럼 자신이 무슨 일로 어디 있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책임능력 경계에 선 사람들에게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면서 “미국처럼 문제해결 법원 등을 통해 정부·시민·공공기관·지역사회·의료전문가·법원 등이 공조하는 시스템 도입을 고민할 때가 됐다”고 제안했다.

이어 “정신질환자 인권 보호는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인권만을 강조해 이들을 방임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 역시 무책임한 처사다”라면서 “이런 끔찍한 범행이 발생할 때마다 우리는 매우 놀라지만, 정작 놀라운 사실은 범행 원인과 대책에 대한 고민은 순식간에 휘발되고 정신질환자에 대한 공포와 혐오만 남아 쌓인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피해자를 생각하면 극심한 고통 속에서 비통하게 숨을 거둘 때 그녀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다른 정신질환자 가족과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우리 사회가 이들을 치료하고 사회구성원으로 품어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강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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