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파 큰스님의 눈에 비친 울산 (上)
’성파 큰스님의 눈에 비친 울산 (上)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0.27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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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경(畏敬)의 대상인 분을 처음 마주한다는 것은 사뭇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다. 명망 높은 큰스님과의 첫 대면 역시 다르지 않다. ‘영축총림(靈?叢林)의 정신적 사표(師表)’로 불리는 성파(性坡) 큰스님을 지근거리에서 뵙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다. 간간이 그분만의 예술세계를 귀동냥으로 들은 바 있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기회가 왔다. 큰스님과의 교분이 5년차에 접어들었다는 김언배 교수(울산대 섬유디자인학과)가 다리를 놓았다. 조형디자인계의 원로 B이사장(서울)과 주얼리(보석)디자인계의 큰손 R교수(천안)가 일행으로 합류했다.

토요일인 10월 26일 오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양산 통도사(通度寺)의 최고어른[方丈·방장]을 안방 서운암 ‘토굴’(土窟)에서 만나 큰절로 예를 올렸다. (김 교수는 큰스님의 거처를 ‘토굴’이라 부른다.) 말문은 B이사장이 먼저 열었다. 대화의 실마리는 ‘신철기(新鐵器)’(시대)인 듯했으나 그것도 잠시. 말씀을 큰스님이 받아 이끌면서 대화의 주제는 어느 새 ‘역사’ 쪽으로 기울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뜻밖에도 ‘울산’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신라 때 사찰 황룡사가 진골, 왕족을 가르치던 ‘교육도량’이었다면 통도사는 인생관, 세계관을 바꾸어주던 민중사찰이었지. 법으로만 다스리기보다는 정신적으로 국민정신을 새롭게 만들던 곳이라고 할까. 그리고 태화사는 ‘국방사찰’이었지. 지금도 울산에 ‘병영(兵營)’이 있지만 그곳은 말 그대로 군사훈련장이었지.”

큰스님의 말씀은 생소하면서도 신기하게 다가왔다. 태화사(太和寺)가 군사를 양성해서 신라를 지키던 호국사찰이었다는 주장이…. 병영에서 철기를 다루어 병기를 만들고 군사조련을 도맡아 했으며 병영이란 지명이 조선조가 아니라 신라시대부터 존재했다는 주장 역시 그랬다.

“태화동, 태화강이란 말도 태화사가 그 뿌리야. ‘태화(太和)’란 ‘평화’를 의미하지. 태화강, 반구대, 작천정은 정규군의 훈련장이었고 병영, 언양은 화랑(花 郞) 본부가 있던 곳이고. 석남사 입구에 ‘활 궁(弓)’ ‘뿌리 근(根)’이 들어가는 ‘궁근정(弓根亭)’이란 지명도 군사훈련과 무관치 않아. 찾아보면 그 일대에 군사와 관련된 산이름, 마을이름이 많을 거야.”

궁금해서 인터넷을 열어보니, 이 대목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마리아사랑넷’에 이런 글이 올라와 있었다. “궁근정은 삼국시대부터 오랫동안 군영지로 있다가 이후 조선조까지 활과 화살을 만들던 곳이다. 궁근정이란 이름은 이런 역사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울산지역 옛 지명의 유래를 이렇게도 모르고 있었다니…. 큰스님의 설명에 갑자기 낯이 뜨거워지면서 자괴감이 엄습해 왔다. 말씀이 다시 이어졌다.

“가지산 통도사에서 세속오계(世俗五戒)를 설했고 운문사에서 그 오계를 받았지. 백두대간의 가지산, 영축산 일대는 1천 고지 이상인 산이 10개도 넘는데 바로 여기가 화랑의 훈련장이었어.” “지금 ‘화랑의 집’은 경주에 있지만 신라 때의 국방은 모조리 국방사찰 태화사에서 관장했어. 위수사령부가 서울 외곽에 있는 거나 같은 이치라고 봐야겠지.”

울산에 대한 큰스님의 설법 같은 말씀은 태화강물처럼 끝을 모르는 듯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들은 얘기지만, 성파 큰스님은 해병대 부사관 출신이고, 역시 해병대 출신인 김언배 교수에게는 대선배다. 그러니 군사전문가 시각에서 태화사와 태화강을 꿰뚫어보신 거라 해서 지나치지 않을 듯싶다. 태화강을 끼고 있는 울산은 한마디로 신라 정규군 ‘화랑’이 근거지로 삼았던 ‘요새 중의 요새’라는 것이 큰스님의 지론이었다. ▷다음 글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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