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th, be not proud’(죽음이여, 자만하지마라)
‘Death, be not proud’(죽음이여, 자만하지마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0.2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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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재판에 관한 일화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어느 날 두 여인이 솔로몬을 찾아왔다. 이 여인들은 한 집에 같이 살고 있었고 얼마 전에 둘 다 아이를 낳았다. 그러던 중 한 여인이 잠을 자는 동안 아이를 실수로 눌렀고, 새벽에 젖을 주려고 보니 죽어있었다. 그녀는 건넌방에 가서 잠을 자고 있던 다른 여인의 품에 죽은 아이를 안기고 살아있는 아이를 몰래 안고 나왔다. 아침에 잠에서 깬 다른 여인은 죽은 아이를 보고 무척 슬퍼했지만 잠시 후 죽은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님을 알아챘다. 하지만 상대 여인도 살아있는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들은 솔로몬 왕에게 재판을 요청했다. 재판에서 한 여인은 아이를 죽인 엄마가 살아있는 자신의 아이와 바꿔치기했다고 호소했다. 물론 상대 여인도 죽은 아이가 다른 여인의 아이이고 살아있는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고 주장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솔로몬은 칼을 가져와 ‘살아있는 이 아이를 둘로 잘라 반반씩 나눠 가지도록 하라’고 언명했다. 그러자 한 여인은 대경실색하여 ‘“Oh, my lord, give her the living child, and by no means kill him.”(대왕이시여! 그 아이를 저 여인에게 주십시오. 그리고 결코 아이를 죽이지만 말아주십시오)라고 울먹이며 말했고, 다른 여인은 “He shall be neither mine nor thine; divide him!”(이 살아있는 아이가 나의 아이도 저 여인의 아이도 될 수 없다면 차라리 아이를 반으로 나눠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서초동 촛불집회에 100만이상의 시민이 주말마다 검찰청을 에워싸고 촛불을 들었다. 반면, 광화문에서는 조국 장관 사퇴를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한 쪽은 ‘검찰 개혁’과 ‘조국 수호’를 외쳤고 다른 쪽은 ‘조국 장관 사퇴’를 요구했다. 결국, 조국 장관은 사퇴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그동안 조 장관을 둘러싸고 국민 갈등이 커진 데 대해 사과했다. 분명 그들이 주장하는 두 개 중 하나는 특권과 반칙, 불공정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정의로운 대한민국이었을 것이다.

검찰은 보편적이고 공평한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 그래야 그 정당성이 인정된다. 촛불을 든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명분 없는 과잉수사가 오히려 검찰 개혁의 반발력으로 보일 것이다. 다른 한 쪽은 검찰이 조국 장관과 관련한 모든 의혹을 수사하며 별건·먼지털기·신상털기 수사에 큰 박수와 환호를 보내고 있다. 그들에게는 검찰의 과도한 ‘조국 일가 수사’에 문제점이나 의문점이 크게 불편하지 않을 수도 있다. ‘divide him’을 주장했던 여인이 불편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이제, 검찰은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대통령의 임명권 과정에 개입하는 ‘선택적 정의’가 아닌 상식이 통하는 ‘보편적 정의’의 실현에 사용해야 한다. 조직의 명령을 받아 아이를 반으로 나누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사법정의인지 아니면 솔로몬의 지혜로 이 시대가 열망하는 검찰 개혁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사법정의인지 잘 판단해야 한다.

Death, be not proud, though some have called thee/ Mighty and dreadful, for thou are not so;(죽음이여, 자만하지마라. 혹자는 그대가 절대적이며 두려운 존재라 하지만 사실 그대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중략- And death shall be no more; Death, thou shalt die. (더 이상 죽음은 없으리. 죽음이여, 그리하여 그대가 비로소 죽게 되리라)

17세기 영국 시인 겸 성직자인 John Donne은 헤밍웨이의 소설 ‘For whom the Bell Tolls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도입부를 장식하는 기도문으로 유명하다. 그는 ‘Holy Sonnet’에서 생물학적 죽음을 맞이한 마지막 순간까지도 신학자이자 시인으로서 시를 쓰기 위한 강한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검경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신설’은 물러설 수 없는 이 시대의 사명이다. 검찰은 조국 일가 특별수사로 언론과 사법 그리고 정치권력의 절대적 위력을 보여줄 수는 있겠지만 검찰개혁을 열망하는 촛불국민에게는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되지 않을 것이다. 400년 전 존 던의 시 구절처럼 ‘죽음이여, 그대가 죽게 되리라.’

임채오 울산북구의회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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