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 오브 하츠 - 질서와 혼돈, 그 사이에 핀 욕망
퀸 오브 하츠 - 질서와 혼돈, 그 사이에 핀 욕망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0.24 20: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퀸 오브 하츠' 한 장면.
영화 '퀸 오브 하츠' 한 장면.

 

<퀸 오브 하츠>에서 중년의 안느(트린 디어홈)는 청소년 전문 변호사다. 그녀에겐 의사인 남편 피터(마그누스 크레페르)와 아직 어린 쌍둥이 딸들이 있었다. 누가 봐도 스웨덴의 중산층 가정으로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었던 것. 허나 그리 행복하지는 않았다. 그랬다. 안느는 지금 ‘권태’라는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었다.

그런데 그 무렵 남편인 피터와 그의 전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구스타브(구스타브 린드)가 집에 들어오게 된다. 고등학생으로 사고뭉치였던 구스타브를 친부인 피터가 떠안게 됐던 것. 그렇게 해서 이젠 다섯 식구가 함께 살게 됐다. 자신이 낳은 자식은 아니었지만 청소년 전문 변호사답게 안느는 구스타브를 진심으로 대했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일종의 반항심으로 한 동안 사고를 계속 쳤던 구스타브도 안느의 따뜻한 보살핌에 점점 마음을 열며 가족의 일부가 되어 갔다.

하지만 다시 찾아온 평화는 오래 가지 못했다. 이번엔 안느가 사고를 치고 만다. 권태의 늪에 빠진 안느에게 젊고 매력적인 구스타브가 유혹으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 안느의 외로움을 눈치 챈 구스타브도 안느에게 점점 다가갔고, 결국 욕망을 이겨내지 못한 안느가 남편이 출장을 간 밤늦은 시각, 구스타브의 방을 노크하면서 둘은 연인이 된다.

그리고 비록 위험한 관계였지만 사고를 친 뒤 안느의 권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게 된다.

하다하다 이젠 삼류 에로영화까지 글을 쓰냐고 하겠지만 놀라지 마시길. 이 영화,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전석 매진을 기록했던 화제작이다. TV드라마는 몰라도 영화는 부끄러움, 그런 거 모른다. 인간에 대해 있는 그대로를 다 까발린다. 그리고 <퀸 오브 하츠>는 욕망을 다루는 인간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인간에게 있어 욕망은 ‘상자 안에 꼭꼭 숨겨둔 괴물’같은 거다. 미쳐 날뛰는 괴물처럼 힘이 세지만 남들 앞에 드러내기 부끄러워 보통은 상자 안에 꼭꼭 숨겨 둔다. 그게 성적인 것이든, 야망이든. 그런 욕망은 창조의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허울 좋게 사랑이라 부르지만 생명을 잉태하는 직접적인 힘은 사실 욕망이다. 그렇게 인간은 누구나 욕망의 자식들인 셈. 해서 죽을 때까지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욕망은 가끔 도덕이나 양심도 초월한다. 채워지지 않으면 공허해지니까. 청소년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청소년 전문 변호사인 안느가 그런 일을 저지르게 됐던 까닭이다.

구스타브를 범하기 전 공허함을 못 이겨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안느의 모습은, 그래서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변명 같은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안느의 욕망에는 조금 고차원적인 부분도 있다. 그건 바로 지나가버린 청춘에 대한 향수. 구스타브가 여자친구를 집으로 데려와 2층에서 관계를 갖자, 안느가 자기 방에서 벌거벗은 자신의 몸을 거울에 비춰보며 군데군데 패인 주름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장면에서는 동정심마저 생긴다.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한 청춘으로의 회귀였기에 어린 구스타브를 품으려는 죄스런 욕망에도 스스로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니겠는가.

그랬거나 말거나 이 영화는 단순히 인간의 욕망에만 머물지 않는다. 구스타브와의 위험한 사랑이 발각된 후 보이게 되는 안느의 모습은 이젠 ‘질서’와 ‘혼돈’의 문제로 파고들게 된다.

질서는 안정적이지만 별로 재미가 없고, 혼돈은 불안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슴이 뛴다. 그리고 그런 질서와 혼돈 사이에는 언제나 욕망이 존재한다. 욕망을 못 이겨 스스로 질서를 깨버린 안느는 혼돈이 오자 이젠 그 욕망을 감춘 뒤 잃었던 질서를 다시 찾으려 든다. 분명 손가락질 받을 짓이지만 이해는 된다.

감출 순 있어도, 감당할 순 없는 욕망 앞에서 인간이라면 누구든 질서와 혼돈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니까. 또 그게 삶이 진정 어려운 이유가 아닐까. 좋으면 위험하고, 안정적이면 별 재미가 없다. 뭐든 깔끔하게 정리되는 게 없다.

그래도 아름다움은 존재한다. 그런 질서와 혼돈, 욕망의 삼중주 속에서 비로소 시(詩)가 터져 나오니까.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두 천재 시인이었던 랭보와 폴 베를렌의 실제 사랑을 영화화한 <토탈 이클립스>에서 처를 외면한 채 어린 랭보(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사랑해 동성애를 즐겼던 베를렌(데이빗 듈리스)도 랭보가 죽은 뒤 그를 그리워하며 이런 시를 남긴다. “그가 죽은 후 매일 밤 그를 보았다. 나의 가장 크고 찬란한 죄악. 우린 행복했다. 항상..”

2019년 VOD개봉. 러닝타임 127분.

취재1부 이상길 차장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